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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장 눈으로 눈싸움 못하는 이유?


스키 시즌이다. 예전에는 주로 눈이 많이 오는 강원도에 스키장이 있었지만 요즘은 지역에 상관없이 스키장이 있다. 지난해 말 부천에 276m의 메인 슬로프를 가진 실내스키장이 개장했고, 심지어 사막지역인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도 450m의 메인 슬로프를 가진 실내스키장이 있다. 눈 내리지 않는 지역에도 스키장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한 주인공은 바로 인공설(人工雪)이다.


인공설은 제설기로 만들어진다. 2006년 2월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도 예측할 수 없는 알프스의 날씨 탓에 제설기를 10대나 동원했다. 일명 ‘눈 쏘는 대포’로 불리는 제설기는 눈을 쏘는 게 아니라 5마이크로미터(μm, 100만분의 1m) 이하의 작은 물방울을 분사한다.


공기 중으로 분사된 물방울은 제설기 내부에 비해 줄어든 압력으로 차가워지고 팽창을 하면서 결정핵을 만든다. 여기에 물방울들이 달라붙으면 순식간에 얼면서 인공설이 탄생한다. 이때 공기 중의 습도는 60%보다 낮아야 하고, 기온도 영하 2~3℃ 이하여야 한다. 만약 공기 중 습도가 높으면 물방울이 열을 잘 빼앗기지 못해 분사된 물방울이 그대로 떨어질 수 있다. 국내 스키장에서 쓰는 제설기는 보통 한 시간에 8톤의 물을 눈으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기온이나 습도를 맞춰야 하는 까다로움 때문에 제설기 대신 제빙기를 사용하는 곳도 있다. 제빙기는 이미 만들어진 얼음을 갈아서 뿌리기 때문에 기온, 습도 등의 환경에 상관없이 눈을 만들 수 있다. 최악의 경우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도 스키장이 운영될 수 있는 이유다. 대신 제빙기 한 대는 4억원으로 제설기보다 4배나 비싸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공설은 자연설에 비해 습도가 매우 낮다. 자연설은 습도가 높아 잘 뭉쳐지지만, 인공설은 잘 뭉쳐지지 않는다. 이는 마치 물 없는 밀가루는 뭉치기 힘들지만 물을 타면 쉽게 뭉쳐지는 원리와 같다. 스키장에서 눈싸움을 하기 위해 눈을 뭉쳐본 사람은 잘 뭉쳐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스키장에는 수분이 적어 잘 뭉쳐지지 않는 인공설이 좋다. 자연설은 기온이 올라가거나 여러 사람이 스키를 타면 마찰열을 받아 쉽게 물로 바뀐다. 스키장은 질척거리게 돼 넘어지기라도 하면 온 몸이 축축하게 젖는다. 스키를 타는 박진감도 반감된다. 물은 얼음에 비해 점성이 높아 스키의 속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또 인공설은 자연설에 비해 마찰력이 큰 장점이 있다. ‘미끄러져야 하는’ 스키에 마찰력이 큰 것이 왜 장점이 되나 싶겠지만 스키나 보드가 잘 미끄러지려면 역설적으로 반드시 마찰력이 필요하다. 스키면과 지면 사이에 발생한 마찰력이 열을 일으키고, 이 열로 순간적으로 눈이 녹으면서 스키가 미끄러진다. 스키와 보드를 타려면 마찰력이 필수인 셈이다.


그럼 왜 인공설이 자연설보다 마찰력이 더 큰 것일까. 비밀은 눈의 형성 속도에 달려있다. 자연설은 작은 얼음 알갱이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동안 물방울이 천천히 달라붙어 생겼지만 인공설은 물이 순식간에 얼면서 생긴 것이다. 자연설은 온도나 습도의 변화에 따라 비늘잎에서 나뭇가지, 별 모양까지 다양한 결정 모양을 갖지만 인공설은 빈틈이 없는 얼음알갱이에 가깝다. 따라서 자연설은 결정이 쉽게 부서지고 결정과 결정 사이의 공간이 넉넉하지만 인공설은 방패 모양으로 결정이 뾰족하고 단단해 마찰력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키어 가운데는 인공설보다 자연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인공설에 비해 슬로프 면이 부드럽고 방향을 바꿀 때 ‘눈이 흩날리는 맛’이 있다는 이유다. 또 결정 모양 때문에 인공설은 밟을 때 부드럽지 않고 ‘뽀드득’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스키 타는 맛’에는 물리적인 측면뿐 아니라 심리적인 측면도 강하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전 세계 스키 리조트들이 과거보다 빈번하게 인공설을 만드는 것에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인공설 제조에 과도한 물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산악 지대를 건조하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프랑스는 겨울철 일부 계곡에서 이전보다 70%나 적은 물이 흐르고 있다고 한다. 제빙기로 만든 인공눈이 스키어들에게 ‘행복한 겨울’을 만들어주지만 반드시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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