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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우리나라와 이탈리아의 월드컵 8강 경기. 안정환 선수의 머리에 맞은 공이 이탈리아 명골키퍼 지안루이지 부폰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안정환 선수는 팔을 펼쳐들고 그라운드를 달렸고 부폰은 주저앉아 머리를 떨궜다. 이 순간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안정환이었고, 이탈리아 국민은 모두 부폰이었다. 

골을 넣은 사람은 안정환이고 골을 먹은 사람은 부폰인데 왜 우리가 흥분하고 좌절했을까? 직접 운동장에서 뛰지 않고 관람하는 것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과학자들은 스포츠나 드라마를 보며 몰입하는 이유를 ‘거울신경’(mirror neuron)으로 설명한다. 거울신경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거울신경은 1996년 이탈리아 파르마대 지아코모 리졸라티 연구팀이 처음 제안한 이론이다.

뇌의 신경세포 중에 거울신경이라는 것이 있어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마치 거울처럼 비춘다는 이론이다. 이 때문에 타인의 행동과 감정까지 마치 자신이 그렇게 한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거울신경 이론은 특정한 신경뉴런을 밝히는 연구 중에 발견됐다. 리졸라티 연구팀은 짧은꼬리원숭이가 먹이를 집어 드는 것과 같은 목표지향적인 행동을 할 때 어떤 신경뉴런이 활동하는지 연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구팀은 곧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연구팀 가운데 한 사람이 음식물을 집자 원숭이의 뉴런들이 마치 자기가 먹이를 집는 것과 똑같은 반응을 보인 것이다. 

원숭이 뇌에 전극을 이식하고 땅콩을 먹을 때 현상을 조사하자 다른 원숭이가 먹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 직접 먹을 때 활성화되는 부위가 동일하게 활성화됐다. 뇌에 ‘보이는 것’과 ‘하는 것’을 동일시하는 부위가 존재한다는 것. 리졸라티는 이 부위를 거울신경이라 정의하고 원숭이 뇌에서 머리 앞부분인 전두엽과 윗부분인 두정엽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사람의 경우도 거울신경이 존재하는 위치는 비슷하다. 

거울신경은 행동은 물론 감정까지 지배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마르코 야코보니 교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표정의 사진을 보여주고 ‘기능성자기공명장치’(fMRI)로 뇌를 촬영했다. 쓰레기 냄새를 맡고 역겨운 표정을 짓는 얼굴을 보여주자 악취를 맡을 때 활성화되는 뉴런이 활성화 됐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 관찰만 해도 같은 감정적 경험을 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럼 거울신경은 실제 생활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거울신경은 학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이에게 밥을 떠먹일 때 엄마가 입을 벌리면 아이가 따라 벌린다. 아이들의 ‘흉내내기’가 거울신경 때문에 가능하다는 얘기다. 더 나아가 언어나 음악, 춤 등을 배울 때도 상대방을 그대로 따라하며 배우는 과정에 거울신경이 관여한다. 부상을 당한 운동선수들은 경기 장면을 보면서 훈련할 수 있다. 운동선수가 경기를 구경할 때 마치 자기가 운동하는 것처럼 거울신경이 자극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또 거울신경은 사회성 개발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두뇌실험실’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박사는 2005년 “거울신경 기능이 장애를 일으키면 자폐증이 생긴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연구결과 자폐증 환자의 거울신경은 자신이 행동할 때만 활성화되고 다른 사람의 행동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한편 여자가 남자보다 거울신경이 더 발달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일반적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드라마에 더 열광하며 깊이 몰입하는 데 그 이유가 거울신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해 7월 신경학 전문학술지 ‘뉴로리포트’에 실린 연구결과에 따르면 거울신경에 관련된 뇌파의 강도가 남자보다 여자가 더 강했다. 

거울신경의 실체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사실 다른 사람의 감정과 의도를 파악하는 복잡한 메커니즘은 거울신경만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다.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고 함께 괴로워하고, 환호하는 사람을 보고 함께 환호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밝히고 싶은가? 간단하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웃어라. 그러면 그 사람의 거울신경이 함께 웃을 것이다. (글 : 이정모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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