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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파이더맨3’가 개봉됐다. 스파이더맨은 다른 슈퍼히어로와는 달리 생활의 고충에 시달리고 인간적인 약점을 지닌 주인공이다. 슈퍼히어로답지 않은 주인공 파커의 인간적인 모습이 관객의 호응을 얻어 앞의 두 편이 흥행에 성공했고, 이번 3편은 3억 달러나 되는 최고의 제작비를 들인 블록버스터로 탄생했다. 


스파이더맨3에서는 특이하게도 3명의 악당이 등장한다. 호버보드를 타고 하늘을 나는 ‘뉴고블린’, 모래로 만들어진 ‘샌드맨’, 최강의 적 ‘베놈’이 스파이더맨의 상대다. 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이 개성 넘치는 적들이 과연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다. 너무 날 세운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첫 번째 적 뉴고블린은 친구였으나 스파이더맨을 아버지의 원수로 오해하고 있는 해리다. 그는 아버지가 개발한 하늘을 나는 호버보드를 더욱 개량해 뉴고블린이 됐다. 호버보드는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 수 있고 강력한 무기도 장착돼 있다. 


현재 뉴고블린이 타고 다니는 호버보드와 가장 유사한 장비는 ‘제트팩’이다. 1920년 소설 ‘하늘의 종달새’(Skylark of Space)에 등장한 제트팩은 1965년 ‘007 썬더볼 작전’에서 제임스 본드가 사용했으며 1984년 미국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개막식에서 수많은 사람에게 시연돼 눈길을 끌었다. 


제트팩은 과산화수소를 90퍼센트 이상 고농축하여 태울 때 발생하는 연소가스를 엔진의 노즐 밖으로 방출함으로써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추진력을 얻어 앞으로 날아간다. 제트팩은 처음 군에서 큰 관심을 보였으나 속도가 느리며 엔진소리도 시끄러워 쉽게 발각되는 약점이 있어 채택되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안정성, 효율성이 보완되면 뉴고블린이 타고 날아다녔던 것처럼 하늘을 나는 개인용 이동기구로 각광받을 것이다. 


스파이더맨을 괴롭힌 두 번째 적 샌드맨은 수수께끼 실험에서 방사능에 노출돼 모래를 마음대로 부리는 능력을 갖게 된다. 자유자재로 사람이 되었다 모래바람이 되었다 하면서 스파이더맨을 곤경에 빠뜨린다. 돌연변이로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다는 설정은 사실 과학적으로는 그릇되지만 그건 스파이더맨의 기본 전제니 넘어가기로 하자. 


우선 모래가 생명체의 구성 성분이 될 수 있을까? 지구의 생명체를 구성하는 원소는 탄소, 수소, 산소, 질소, 황, 인과 철, 칼슘, 마그네슘 등 다양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소는 탄소다. 탄소는 생명체의 구성성분인 단백질은 물론 주영양소인 탄수화물과 지방의 주원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학자는 모래의 주성분인 규소가 탄소와 같은 족이므로 생명체를 구성하는 원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가설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샌드맨이 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은 있는 셈이다. 


샌드맨이 자유자재로 모래바람과 사람 사이를 전환하는 모습은 흡사 ‘터미네이터2’의 T-1000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아직 T-1000 수준은 아니지만 고체와 액체를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변신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현실이 됐다. ‘전기유동유체’는 평소는 물처럼 묽지만 전압을 걸면 끈적한 점액으로 변하고, 젤라틴처럼 굳기도 한다. 액체와 고체를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천분의 3초. 이를 잘 응용하면 샌드맨과 유사한 움직임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최강의 적 베놈은 신비의 외계물질 ‘심비오트’로 탄생했다. 심비오트는 처음에 스파이더맨을 숙주로 이용해 블랙 스파이더맨이 되게 했다. 파커는 자제력을 잃고 내면의 폭력성에 눈을 떠 자신과의 싸움을 치러야 했다. 베놈은 파커가 벗어던진 심비오트를 받아 최강의 악당으로 태어난 것이다. 


‘외계물질’이라는 말을 붙이고 나면 그 다음은 작가 맘이지만, 숙주를 맘대로 조정하는 능력은 마치 기생생물 ‘연가시’(Spinochordodes tellnii)를 떠올리게 한다. 연가시는 물속에서 수십만 개의 알을 낳고 부화된 유충은 주변의 풀에 달라붙는다. 메뚜기, 여치 같은 초식 곤충이 풀을 먹거나 사마귀가 이들 곤충을 먹는 과정에서 연가시의 유충이 체내로 유입된다. 


문제는 연가시가 수중생물이므로 알을 낳기 위해 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 숙주인 메뚜기나 사마귀는 스스로 물속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이때 연가시는 숙주의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특별한 신경전달물질을 배출한다. 이 때 숙주는 스스로 물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연가시는 숙주가 죽지 않는 선에서 미묘하게 숙주를 조정한다. 심비오트가 사람을 숙주로 이용해 조종하지만 그를 죽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스파이더맨3’의 제작자는 뉴욕 전편에 보여준 아찔한 수직 이미지를 강조한 액션만으로는 관객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힘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대거 3명의 적을 등장시켰다. 영화가 먼저인지 과학기술이 먼저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영화와 과학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남는 의문, 3억 달러나 되는 제작비는 대체 어디로 들어갔지? (글 : 이종호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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