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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대부분이 그러하듯 야구는 특히 자연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추운 겨울에는 손이 시려 경기가 어렵고 더운 여름에는 햇볕이 뜨거워 관람이 힘들다. 바람이

불면 공의 궤적이 엉뚱한 방향으로 휘어지고 비가 오면 땅이 질척거려 제대로 뛰는 일이 힘들다. 날씨에 상관없이 경기를 치를 방법은 없는 걸까.

미국의 ‘체이스 필드’, 일본의 ‘오사카 돔’, 대만의 ‘타이베이 아레나’… 야구 애호가이라면 이 3개의 이름만으로도 부러움이 생길 것이다.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폭설이 내려도 마음 편히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야구 전용 돔구장’이다. 돔(dome)은 둥근 형태의 지붕을 얹은 건축물을 가리킨다. 돔구장은 말 그대로 경기장 전체에 돔을 씌운 형태다.

작은 형태의 돔은 선사시대부터 사용됐지만 대규모의 건물을 짓는 일은 쉽지 않다. 고대 로마의 아그리파 장군이 기원전 27년 여러 신을 숭배하기 위해 판테온을 건축하면서 제대로 된 돔 건물의 역사가 시작됐다. 지금 남아 있는 로마의 판테온은 서기 125년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다시 지어진 건물이지만 외벽에는 아그리파의 이름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후 동로마제국이 대형 돔 건축물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터키 이스탄불에 남아 있는 하기아 소피아 이슬람 사원이 대표적이다. 중세 고딕양식이 쇠퇴한 이후 유럽 대부분 국가는 돔 지붕을 적용해 대형 성당의 위용을 높였다. 현대에 들어서는 체육관과 경기장에 돔 기술이 쓰이면서 그 면적이 수백 배로 늘어났다.

최초의 돔구장은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지어진 ‘릴라이언트 애스트로돔’이다. 1965년에 지어진 애스트로돔은 4만4천 석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지름이 220m, 높이가 60m를 넘는 초대형 돔구장이다. 이 지역은 여름철 기온이 섭씨 35도를 넘고 모기떼의 습격이 잦아서 주민들의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돔구장을 만들었고 미식축구나 레슬링 경기에도 사용됐다. 불행하게도 지금은 노후로 인한 철거 절차를 밟고 있다.

사진 1. 세계 최초의 돔구장, 릴라이언트 애스트로돔(출처: wikipedia/EricEnfermero)



미국은 8개, 일본은 6개에 달하는 돔구장을 야구 경기에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63년 장충체육관을 고쳐서 최초의 돔구장을 만들었지만, 야구 경기용은 아니었다. 수십 년의 요구와 논의를 거쳐 2015년 9월 마침내 서울 구로구에 국내 최초의 야구 전용 돔 구장 ‘고척스카이돔’이 완공됐다. 개장은 11월 4일, 우리나라와 쿠바가 벌인 야구대표팀 평가전으로 정해졌다.

돔구장은 흔히들 ‘타자 친화적인 야구장’으로 불린다. “야외 경기장보다 홈런이 더 많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면서다. 야구계에서는 ‘돔런(dome-run)’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진원지는 1982년 개장된 미국 미네소타 트윈스의 홈구장 ‘휴버트 H. 험프리 메트로돔’이다. 그해에만 평균 구장의 두 배에 가까운 191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사진 2. 우리나라 최초의 돔구장, 고척스카이돔(출처: wikipedia/Fetx2002)



비밀은 ‘공기 순환’에 있었다. 메트로돔은 공기를 주입해 천장을 유지하는 방식인데 바람의 방향을 홈플레이트에서 외야 쪽으로 설정함으로써 공이 더 멀리 날아가도록 한 것이다. 상대편 팀이 타석에 들어서면 송풍기를 꺼서 바람을 조절하기도 했다. 엄밀히 말해서 승부 조작이라 비난받을 만하다.

그러나 돔구장 자체의 특성도 타자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은 외부에서 불어오는 자연풍이 차단되기 때문에 방해요소 없이 자신의 타력을 선보일 수 있다. 타자에게 도움을 주는 바람이 분다 해도 타구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한다. 게다가 야외 구장을 지나는 바람은 관중석 벽을 넘어오면서 갑작스레 방향을 틀어 아래쪽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뜬공이 솟구치는 것을 막는다.

또한 구장 내부에 상승기류가 형성되기 때문에 뜬공의 높이가 야외구장보다 높다. 관람객들이 들어차면 체온과 응원 때문에 더 많은 열기가 생성되고 갖가지 조명과 전기장치들도 열을 내뿜는다. 위쪽으로 솟아오른 열기는 천장의 환기구를 통해 빠져나가므로 저절로 기류가 상승한다. 송풍기를 틀어서 천장의 높이를 유지하는 일부 돔구장은 상승기류의 속도가 더욱 빠르다.

돔구장에서 홈런이 나오면 관중은 “역시 돔이야.” 하는 탄성을 내뱉는다. 그렇다면 고척스카이돔에서도 야외 구장보다 더 많은 홈런이 기록될까. 개장 경기였던 우리나

 

라와 쿠바의 평가전에서는 일본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이대호와 2년 연속 50홈런을 기록한 박병호가 큰 관심을 받았다. 4번 타자는 박병호로 선정됐지만 이대호와 마찬가지로 홈런을 날리지 못했다. 홈런 가능성에 근접한 타구도 없었다.

1만8천 석의 고척 스카이돔은 홈플레이트에서 중앙 담장까지의 거리는 122m이며 좌‧우측 파울라인의 길이가 99m다. 중앙 거리 125m에 파울라인 100m의 잠실야구장, 중앙 122m에 파울라인 101m인 울산 문수야구장보다는 작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타자 친화적이라 불리는 목동 야구장이 중앙 거리가 118m에 파울라인은 98m인 것을 생각해보면 마냥 낙관적이지는 않다. 중앙 거리만 따지면 잠실에 이어 우리나라 두 번째다.

게다가 내부에 상승기류가 생기지 않도록 천장의 환기시설을 없앴고, 공조시설도 일부러 공기가 내부에 머무르도록 조절했다. 실제로 쿠바 평가전에서 개막행사로 터진 축포의 연기가 경기 내내 실내에 머물러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기도 했다.

일부러 천장을 맞춰서 홈런을 기록할 수는 없을까.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규정에 따르면 돔구장에서 친 공이 파울 지역의 천장에 맞거나 구조물에 끼면 당연히 파울이지만 천장에 맞고 떨어진 공을 수비수가 잡아내면 아웃이다. 페어 지역에서는 내야와 외야가 나뉜다. 내야 천장에 맞고 떨어진 공을 야수가 잡으면 아웃이고 잡지 못하면 2루타로 기록된다.

반면에 타구가 외야 천장에 맞거나 낀다면 무조건 홈런이다. 그러나 고척스카이돔의 최고 높이는 67.6m다.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애스트로돔의 천장 63.4m보다 4.2m나 더 높다. 애스트로돔에서는 타구가 천장에 맞은 적이 1974년에 단 한 번 있었을 뿐이다. 고척 스카이돔에서 천장을 맞히려면 타구의 비거리가 140m를 넘겨야 한다. 세계적인 기량의 선수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야구는 예측이 쉽지 않은 스포츠다. 언제 누가 홈런을 날릴지는 알 수 없다. 고척 스카이돔에서 탄생한 첫 홈런도 프로선수가 아닌 고등학생의 작품이었다. 지난 11월 12일 열린 청룡기 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서울고등학교 강백호 선수는 8회말 5구째에서 우측 담장을 넘기는 비거리 115m짜리 홈런을 날렸다. 고척스카이돔에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홈런이 기록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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