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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육류 음식을 즐겨 먹는 직장인 박 모(32) 씨는 요즘 들어 우울하기만 하다. 얼마 전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발표한 육류 관련 발암 기사를 접하고 나서부터, 입맛

을 잃었기 때문이다. 오늘 회사 식당에서 제공된 제육볶음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평소 같으면 한 접시 더 먹었을 박 씨지만, 발암 관련 기사가 머릿속을 계속 맴돌며 께름칙한 기분이 들어서 더는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 숨겨진 진실? 아니면 과잉 반응?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IARC가 지난 10월 26일, 햄이나 소시지 같은 가공육과 적색육(red meat)을 각각 1등급 발암물질과 2등급 발암물질로 발표한 뒤, 국내 축산 업계와 소비자들에게 불어 닥친 후폭풍은 꺼질 줄을 모르고 있다. 해외 축산업계도 이번 발표로 상당한 피해를 보고 있지만, 국내 축산업계는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다. 매출은 반 토막이 났고, 하루아침에 인체에 해로운 식품을 파는 주범으로 전락해 버렸다.

사진 1. 적색육(출처: wikimedia)



소비자들 또한 그동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적색육이나 가공육을 즐겨 먹어 왔는데, 갑자기 담배나 석면 같은 발암물질로 분류된 것을 보고 모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특히나 자녀가 있는 집에서는 가공육에 길들어 있는 아이들의 입맛을 대체할 식품을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이처럼 업계와 소비자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심각하자 며칠 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한국인의 섭취량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라고 발표하며 진정에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은 식탁에 자주 오르는 햄과 돼지고기를 먹어도 되는지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도대체 어떤 성분이 문제이기에 지난 몇 십 년 동안 잘 먹고 잘 지냈던 가공육과 육류가 하루아침에 발암 물질로 전락한 것일까? 진짜로 암을 일으키는 성분이 포함돼 있었는데 그동안 소비자가 모르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과잉 반응에 따른 침소봉대(針小棒大)의 소산일까?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그 이유에 대해 한번 알아봐야겠다.

■ 아질산나트륨이 발암물질을 유발한다?!

IARC가 현재 발암 유발 물질로 지목한 물질은 적색육을 조리할 때 발생하는 화학물질과 가공육에 들어있는 화학첨가물이다. 이 중 적색육을 조리할 때 발생하는 ‘N-니트로소 화합물(NOC)’과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가 가장 의심을 받는 화학물질이다. 이들은 절임(curing)이나 훈제(smoking) 같은 가공육 공정에서 만들어지는 유해물질로 알려졌지만, 부치기(pan frying)와 그릴(grilling), 그리고 바비큐(barbecuing)와 같이 육류를 고온으로 조리하는 과정에서도 대거 생성된다.

가공육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공육도 처음 만드는 과정은 적색육을 조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앞에서 언급한 물질 외에도 ‘헤테로사이클릭아민(HCAs)’이 제조 과정에서 생성되는데, 이 성분 또한 발암 유발 물질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화학물질 중 일부는 이미 암을 유발하는 성분을 가진 것으로 강력한 의심을 받고 있거나, 이미 확인된 물질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에도 불구하고 적색육이나 가공육으로 인해 어떻게 암 위험이 증가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사진 2. 아질산나트륨의 성상 및 분자식(출처: wikipedia)



화학첨가물로는 가공육에 들어가는 아질산나트륨(sodium nitrite)이 논란의 주인공이다. 가공육은 고기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각종 첨가물을 넣게 되는데, 이 중에서 아질산나트륨은 붉은빛을 돌게 하는 발색제의 역할과 맹독성 식중독균인 보툴리누스(botulinum) 균의 번식을 막는 보존제 역할을 한다.

아질산나트륨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는 높은 온도에서 육류의 아민(amine)과 결합해, ​발암물질인 니트로사민(nitrosamine)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국내 식품안전 전문 검사기관들은 15세미만의 어린이와 임산부가 아질산나트륨을 많이 먹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질산나트륨 등 각종 첨가물을 뺀 천연 가공육은 발암 가능성으로부터 안전할까? 이에 대해서도 아직 명확한 결론이 나 있지 않은 상황인데, 사실 결론이 나 있지 않다기보다는 ‘모른다’는 것이 정답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아질산나트륨과 같은 첨가물을 뺀 햄이나 소시지가 국내에서도 판매되고는 있으나, IARC의 이번 발표가 가공육의 특정 첨가물이 발암 요인이라는 것을 밝힌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질산나트륨과 같은 첨가물을 뺀 가공육이 발암 위험이 적거나 없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 유해성과 위해성 혼동 말아야



이처럼 모든 것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과연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현명할까? 이에 대해 국내 암 전문가들은 ‘발암 물질과 접촉해도 발암 위험이 없는 적정량과 안전한 조리방법을 택해 이를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여기서 적정량이란 발암 여부를 평가할 때, 발암 성분의 존재 여부와 함께 그 성분의 용량까지 고려돼야 한다는 점을 뜻한다. 예를 들면 옥수수나 콩의 썩은 부분에서 검출되는 아플라톡신(aflatoxin)은 니코틴(nicotine)보다 독성은 훨씬 높지만, 인체 노출량은 니코틴의 백만 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독성은 강하지만 양이 적은 아플라톡신보다는, 독성은 낮지만 훨씬 많은 양이 인체에 노출되는 니코틴이 더 문제라는 의미다. 이 같은 비유를 든 이유는 적색육이나 가공육 섭취량이 서양인에 못 미치는 동양인에게 서양인과 같은 잣대를 댈 수는 없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특히 먹거리와 같은 생활 습관 요인은 인종이나 지역, 문화 등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이번 IARC의 발표를 우리 식탁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많은 규명 작업이 이뤄지겠지만, 현재 시점에서 소비자들이 알아야 할 분명한 사항은 육류의 유해성(Hazard)과 위해성(Risk)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해로운 점은 있지만, 얼마만큼 먹어야 위험한지에 대해서는 IARC 조차도 답변이 궁한 상황이니까.

글 : 김준래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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