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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원숭이가 겨울에 온천욕을 하는 모습은 일본의 겨울철 관광 상품 해외 홍보물에 자주 실리는 사진 중 하나다. 


사람을 제외한 영장류 중 가장 북쪽에 서식하는 야생 일본원숭이들은 실제로 야외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긴다. 올해가 붉은 원숭이해인데, 빨간색 얼굴이 특징인 일본원숭이들이 온천에 들어가면 더욱 빨개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일본원숭이 모두가 온천욕을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소수의 원숭이만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고, 나머지 원숭이들은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서 벌벌 떨고 있다. 


어쩌다 철모르는 새끼 원숭이 한 마리가 탕에 들어갔다간 수컷 우두머리에게 치도곤을 당하게 마련이다. 온천 속에 암컷과 다른 새끼들도 있는 걸로 보아 힘이 센 개체만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원숭이들은 위계질서가 뚜렷한 계급사회여서 온천에는 계급이 높은 원숭이들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온천에 빈자리가 많은데 너무 한 듯하다. 그 장면을 보면 원숭이가 예부터 지혜와 영리함의 상징 동물이라지만, 동물은 역시 동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최근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원숭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인간과 비슷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최근 프랑스 인지신경과학센터와 리옹대학교 공동연구진이 <심리?인지과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원숭이들도 동료의 고통을 이해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은 마카크 원숭이 14쌍을 실험 대상으로 해, 각 원숭이의 입 주변엔 주스 공급 장치(보상 장치)와 눈 주변에는 센 바람이 나오는 장치(처벌 장치)를 설치했다. 


투명한 터치스크린을 가운데 두고 두 마리를 마주 보게 한 다음 터치스크린에 표시된 보상 및 처벌 장치의 버튼을 누르게 했다. 연구진이 설정한 보상 및 처벌의 실험 조건은 다양했다. 예를 들면 한 원숭이가 주스를 누를 경우 상대 원숭이에게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는 경우도 있고, 주스 선택 시 상대 원숭이의 눈에 센 바람이 나오는 경우 등 다양한 상황과 파트너 원숭이들을 바꿔가며 실험이 진행됐다. 


그 결과 대부분의 원숭이가 상대 원숭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친 사회적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원숭이들은 상대에게 될 수 있으면 주스가 주어지도록 했으며, 상대가 바람을 맞는 상황을 애써 피했다. 또 둘 다 주스를 먹는 상황이 됐을 땐 서로를 바라보며 교감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상대방이 센 바람을 맞을 때는 당혹감을 표시하듯 자신의 눈을 크게 뜨고 여러 번 깜빡거리기도 했다. 



지나칠 정도의 이타심을 발휘하는 원숭이 개체도 관찰됐다. 한 수컷 원숭이의 경우 배우자인 암컷 원숭이가 바람을 맞게 하는 대신 자신이 바람을 맞는 상황을 훨씬 많이 선택했으며, 또 다른 원숭이는 누가 파트너가 되든 상관없이 모두에게 일관된 친 사회적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생충에 감염되면 사람들은 구충제를 먹는다. 그런데 야생의 원숭이들도 그런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조지아대 연구팀은 아프리카 우간다 키발레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붉은콜로부스원숭이가 촌충(寸蟲)에 감염됐을 때의 상태 변화를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촌충에 감염된 개체들의 경우 나무껍질을 평소보다 두 배 정도 더 많이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무에서 먹고 자는 붉은콜로부스원숭이의 먹이는 90%가 나뭇잎이고 3.8%가 나무껍질이다. 그런데 촌충에 감염되면 나무껍질 비율이 7.4%로 늘어나는 것이다. 


원숭이들이 나무껍질을 더 많이 섭취한 까닭은 거기에 기생충을 죽이는 작용을 하는 사포닌 성분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자귀나무나 아보카도 나무 등이 바로 그런 성분을 가진 나무인데, 이 식물들은 현지 주민들도 각종 증상을 치료할 목적으로 이용하는 약용식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해 9월 <영국왕립학회보B>에 발표됐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격언이 있다. 이질적인 존재로 보이고 싶지 않으면 그 문화에 맞게 스스로 적응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처세술에 대한 가르침이다. 그런데 원숭이도 다른 집단에 소속될 경우 재빨리 그 집단의 새로운 문화에 맞춰 행동한다는 사실이 과학자들의 실험결과 밝혀졌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 연구진은 야생 버빗원숭이를 여러 집단으로 나눈 후, 한 집단에는 파란색으로 염색한 옥수수 알갱이에 쓴맛이 나는 첨가제를 섞어서 원숭이들이 분홍색 알갱이만 골라 먹게 했다. 그리고 다른 집단에는 반대로 분홍색 알갱이에 쓴맛이 나게 해 파란색 알갱이만 골라 먹게 했다. 


그 후 여러 색깔이 섞였지만, 쓴맛 첨가제는 넣지 않은 옥수수 통을 놓아두어도 원숭이들은 원래 골라 먹던 색깔의 먹이만 먹었으며, 새로 태어난 새끼 원숭이들도 어미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게 됐다. 


하지만 이 새끼 원숭이들을 다른 집단으로 옮겨 놓자 대부분이 원래 자기가 먹던 색깔의 옥수수를 선택하지 않고 주저 없이 새로운 집단이 먹는 색깔의 알갱이를 집어먹은 것이다. 심지어 짝짓기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수컷 개체들도 한순간의 망설임 없이 새로운 집단의 알갱이 색깔을 선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원숭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친 사화적인 동물이라는 증거다. 


회사원들이 가끔 상사를 속이듯이 원숭이들도 자기보다 계급이 높은 개체를 속인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영국 존무어대학 연구진이 긴꼬리원숭이 등 세 종류의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한 결과, 지위가 낮은 원숭이들이 상급 원숭이 몰래 먹이를 숨겨두고 혼자서만 먹는 행동이 관찰됐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상하 관계가 엄격한 무리일수록 더욱 철저하게 먹이 위치를 숨기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동양의 일부 지역에서는 예로부터 원숭이를 재수 없는 동물로 여겨 기피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어쩌면 원숭이가 인간과 너무나 비슷한 습성을 지녔기 때문에 생긴 오해일지도 모른다. 


글 : 이성규 과학칼럼니스트


영장류;마카크 원숭이;붉은콜로부스원숭이;촌충;버빗 원숭이;Primates;Macaque monkey;Red colubus monkey;Tapeworm;Vervet monkey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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