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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은 현대 생활의 뼈, 조직, 피부가 되었다.” 
                                                  - 수전 프라인켈, <플라스틱 사회>
 

플라스틱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30년대 영국 화학자들에 의해서고, 대중화되기 시작한 건 2차 세계대전 이후니 채 100년이 되지 않은 기간 동안 플라스틱은 유리, 나무, 철, 종이, 섬유 등을 대체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제 식품, 화장품, 세제, 의약품 등 현대인의 생활은 모두 플라스틱으로 싸여 있다. 이토록 플라스틱이 번성하게 된 비결은 우선 변신 가능성에 있다. 물렁물렁한 케첩 통도 탄탄한 자동차 내장재도 플라스틱이다. 

필요에 따라 유연성과 탄력성, 강도와 내구성을 조절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만능 소재. 소소한 포장재부터 가구와 의복까지 플라스틱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싼 가격, 무궁무진한 활용 가능성에 더해 플라스틱이 가진 놀라운 특성 중 또 하나는 영속성(永續性)이다. 플라스틱은 분해되거나 녹슬지 않는다. 인간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모든 플라스틱은 지구 어딘가에 계속 존재한다. 사라지지 않는 플라스틱은 지구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골칫거리다. 

피부 각질 제거에 효과 있는 세안제나 치약 속에 든 작고 꺼끌꺼끌한 알갱이 역시 플라스틱이다. ‘마이크로비드(microbead)’로 불리는 아주 작은 플라스틱은 최근 해양 오염의 적으로 경계대상이 되고 있다. 시판되는 제품에 함유된 마이크로비드는 주로 폴리에틸렌으로 만들어지며, 폴리프로필렌,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폴리메틸 메타크릴레이트, 나일론으로도 만들어진다. 마이크로비드는 크기가 1mm보다 작은 플라스틱이다. 크기가 5mm 이하인 것을 미세 플라스틱이라고 하는데, 마이크로비드의 크기는 그보다 훨씬 작은 것이다. 이렇게 작은 마이크로비드는 정수 처리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고 하수구를 통해 강으로, 바다로 스며든다. 

바다로 흘러간 마이크로비드는 어떻게 될까? 바닷새에게는 이 작고 반짝이는 마이크로비드가 물고기 알로 보일 수 있다. 이미 바닷새들을 플라스틱을 주식처럼 먹고 있다고 한다. 거북은 비닐을 해파리로 오인해 먹기도 하고, 고래는 썩지 않는 플라스틱 때문에 위가 파열돼 죽은 채로 발견되기도 한다. 

2015년 여름 일본 도쿄에서 잡은 멸치 64마리 중 49마리의 체내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된 연구 사례도 있다.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는 알바트로스, 갈매기, 펭귄 등 42개 속 186종의 바닷새들의 먹이 행태 및 해양 플라스틱 관련 자료를 종합하고 분석해, 2050년이 되면 모든 바닷새의 99.8%가 플라스틱을 먹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게 되리란 우울한 예측도 있다. 

물고기는 플라스틱을 먹기만 하는 게 아니다. 작게 쪼개진 플라스틱은 비늘에 박히거나 아가미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간다. 해양 포유동물 267종은 플라스틱 때문에 다치거나 죽는다. 미역이나 김과 같은 해조류나 산호초, 굴 등도 미세 플라스틱으로 인해 위험에 처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프랑스 국립해양연구소(IFREMER)의 아르노 후베 박사 연구팀은 폴리스틸렌 입자를 풀어놓은 물에 태평양에 서식하는 굴을 이식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두 달 후 굴의 난세포 수가 정상보다 35% 줄어들었고, 정자의 활동 빈도도 정상보다 23% 느린 것으로 조사됐으며, 굴의 성장속도도 현저하게 느려진 것을 확인했다. 게다가 플라스틱을 먹은 굴은 내분비교란물질을 배출했다. 

물고기만 문제가 아니다. 중국 화둥사범대학교 연구팀은 중국산 소금 제품 안에 마이크로비드를 포함한 ‘미세 플라스틱’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연구팀에 의하면 바닷물로 만든 소금의 경우는 평균 1kg당 550~681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권장 섭취량에 맞춰 이 소금을 먹으면 1년에 1000개의 미세 플라스틱 알갱이를 섭취하는 셈이 된다. 

마이크로비드로 인해 식수가 오염되는 상황도 예상해볼 수 있다. 바다에 버려진 크기가 큰 플라스틱은 햇빛과 파도에 의해 잘게 쪼개진다. 플라스틱은 얼마나 더 작아질 수 있을까? 1mm의 1/1000인 1μm(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마이크로비드도 발견된 바 있다.
 
작아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분해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작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해질 뿐이다. 

게다가 플라스틱은 자석처럼 외부 오염물질을 끌어당긴다.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 조각은 폴리염화비페닐이나 DDT 같은 독성 화학물질과 비스페놀A 등의 내분비교란물질을 흡수하는 스펀지 역할을 한다. 이렇게 오염된 플라스틱이 축적된 해양 생물을 먹는다면 인간 역시 안전할 수 없다. 

해양 플라스틱 폐기물에 관한 최초의 보고서는 이미 1960년대에 나왔지만 크게 대두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이크로비드에 대처하는 자세는 사뭇 다르다. 미세 플라스틱의 문제에 대한 국제 컨퍼런스가 최초로 열린 때는 2008년으로 비교적 최근이지만 위기감은 높다. 미국의 각 주는 2015년에 잇달아 마이크로비드 사용금지를 선언했고, 지난해 말 오바마 대통령은 2017년부터 세안제품에 마이크로비드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수질오염 방지법에 서명했다. 유니레버, 로레알, 존슨앤존슨 등 다국적 위생제품생산 업체들도 앞다퉈 생산 중단을 선언했다. 

과연 인간은 얼마만큼의 마이크로비드를 바다에 버리고 있을까? 정확한 수치조차 알기 어렵다. 해양 미세 플라스틱 문제에서 우리 바다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국내에 유통되는 400개 이상의 제품이 마이크로비드를 함유하고 있다. 한 제품이 무려 35만 개를 함유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유류유해물질연구단에 따르면, 거제 해역의 바닷물 1m3에서 평균 21만 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된다고 한다. 이는 싱가포르 해역의 100배에 달하는 양이다. 

플라스틱은 탄생한 지 한 세기도 되기 전에 우리 생활을 잠식했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플라스틱 그릇, 플라스틱 포크로 음식을 먹으면서도 몰랐다. 우리가 플라스틱을 먹게 될 줄은. 이미 바닷새와 물고기의 위장엔 플라스틱이 가득하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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