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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 속엔 맛의 신기루가 떠다닌다. 평소에 잘 먹지 않던 음식도 탄성을 자아내고, 침이 고이게 만든다. 얼마 전 한 케이블TV의 예능프로그램이 양구이를 다뤘다. 양구이라면 양고기를 떠올릴 이도 있겠지만, 양구이는 소의 위(胃)를 이용한 요리. 소의 위 중에서도 첫 번째 위인 혹위로 요리한다. 

소의 위가 몇 개나 되기에 첫 번째인가? 소는 반추(反芻) 동물이다. 반추동물은 지구상에 약 250여 종이 존재하는데 소, 양, 사슴, 기린, 임팔라 등이 여기에 속한다. 되새김질을 하는 특수한 위 구조를 가진 것이 특징으로 하루에 3만 번, 12시간 이상을 씹고 되새기며 보낸다. 소는 4개의 위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혹위 뿐 아니라 2, 3, 4위도 모두 먹는다. 2위인 벌집위는 거무스름한 색으로 구워서 먹기도 하지만 주로 내장탕에 들어간다. 3위는 기름장에 찍어 먹는 고소한 맛의 천엽(처녑)이고, 4위는 막창이다. 돼지고기 막창은 창자의 끝부분이지만 소의 막창은 이렇게 위장의 끝부분이다. 


그림. 소의 내장기관(출처: shutterstock.com)



우리가 이렇듯 알뜰히 먹어 치우는 소의 위장은 소가 살아 있을 때는 어떤 일을 했던 걸까? 너른 들판에서 한가로이 풀을 먹는 소를 떠올려보자. 소는 쉬지 않고 풀을 먹는다. 섬유질 투성이인 질긴 풀이니 쉽게 씹히지도 않을 성 싶다. 일단 넣고 보자는 듯 우걱우걱 삼킨다. 사실 소에게는 이 풀들의 셀룰로오스를 분해할 효소가 없다. 그럼 어떻게 소화시킬까? 

풀들이 가는 곳은 제1위인 혹위다. 혹처럼 불룩 튀어나온 모양이라 붙은 이름인데 대략 150L의 거대한 용량이다. 이 혹위에서 미생물이 풀을 기다리고 있다. 무려 1,000조 마리의 미생물이. 이 미생물들은 식물의 셀룰로오스를 당분으로 분해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셀룰로오스는 물에 거의 녹지 않고 미생물이 분해하기엔 너무 크기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정이다. 

반추위는 꿈틀거리며 먹이와 미생물, 침을 뒤섞어 제2위인 벌집위로 보낸다. 거기서 음식물들은 둥그스름한 덩어리가 되고, 소는 끄윽 트림하듯 토하여 이 덩어리를 입으로 가져와 다시 씹는다. 바로 되새김질이다. 50번 이상 씹은 뒤 다시 삼킨다. 이렇게 음식물은 9~12시간을 제1위와 2위에 머문다. 그 동안 미생물들은 셀룰라아제 효소를 분비해 셀룰로오스 덩어리에 달라붙는다. 이 과정을 거쳐 셀룰로오스는 당분 분자(포도당)로 분해된다. 

하지만 아직 소는 이 영양분을 사용하지 못한다. 미생물들이 다 써버리기 때문이다. 얻는 것이 아주 없진 않다. 반추위는 혐기성 환경이라 미생물들은 발효의 산물로 생겨난 휘발성 지방산, 아미노산, 비타민 등은 사용하지 못한다. 소는 이것들을 흡수한다. 반추위의 냄새는 지독하지만 영양의 보고다. 에스키모 일부 부족은 소와 마찬가지로 반추동물인 순록을 사냥하면 반추위 내용물을 먹어 비타민을 보충한다고 한다. 

천 겹으로 이루어졌다 해서 천엽이라 불리는 제3위는 여러 개의 주름이 있는 겹주름위이다. 이곳은 1, 2위를 거친 내용물들을 조그만 구멍을 통해 흡수하고, 내용물 중 수분을 흡수한다. 그리고 마침내 음식물은 제4위에 도착한다. 이곳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위와 비슷한 곳이다.
 
제4위는 산성 환경으로 강한 소화액을 내 뿜는다. 소 막창구이를 굽다보면 빠져나오는 곱은 바로 소의 강력한 소화액이다. 소는 강한 소화액으로 반추위에서 생성된 미생물들을 소화시킨다. 소는 풀만 먹지만, 풀을 소화하기 위해 미생물을 이용하고, 그 미생물이 발효한 산물들을 소화, 흡수해서 단백질과 같은 필요한 양분을 얻는다. 풀만 먹는 소가 몸무게 500kg에 이르는 덩치로 자라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소의 위에는 여러 종류의 미생물이 살고 있고, 각자의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박테리아, 원생동물, 혐기성 곰팡이 등이 그것. 박테리아는 총 미생물 량의 50% 이상을 차지하는데, 밝혀진 것만 200종이 넘는다. 반추위 박테리아의 수명은 20분에서 길어야 3시간이다. 원생동물 중 고세균은 독특한 성질을 가지는데, 바로 메탄생성균인 메타노젠(methanogen)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메탄생성균은 소의 제1위에 존재하며 메탄을 만들어, 소가 호흡하거나 트림할 때 분출한다. 소 한 마리가 배출하는 메탄가스 양은 연간 50kg에 이르는데, 어림잡아도 전 세계 메탄가스 배출량의 15%를 넘는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열을 잡아 가두는 능력이 21배가 높아,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소가 지목되는 것이다. 

소가 트림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제1위에서 가스가 급격히 늘어 복부가 풍선처럼 부푸는 고창증(鼓脹症)에 걸린다. 위가 확장되며 폐를 압박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병이다. 부패한 사료나 전분이나 당류가 많은 곡류 사료를 많이 먹으면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대체로 처음부터 조제사료를 먹는 소에게는 급격한 변화로 인한 발병은 드물지만 곡류 사료를 과다하게 투여하면 반추위에서 발효가 너무 빨리 일어나고 미생물 균형이 깨진다. 

반추위 기능도 저하된다. 앞서 언급한 양구이를 다룬 예능프로그램에서 음식평론가 황교익은 소 양구이는 “뉴질랜드 산이 더 맛있다”며 “뉴질랜드는 풀을 먹이기 때문에 소의 위장이 커진다. 그래서 소의 양이 더 크고 두툼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풀을 먹고 자란 소의 위는 제 할 일을 다 하고 결과적으로 인간에게 더 맛있는 먹을거리가 된다. 당연한 일이다. 맛있는 양구이를 먹고 싶다면 소에게 원래 소가 먹던 풀을 주는 게 답. 메탄가스를 줄이기 위해 특정 성분을 추가한 사료를 연구하는 등 골몰하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소가 아니라 인간에게 있을 게다. 인간이 너무 많은 소를 기르고 있다는 자명한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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