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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아름다운 그 얼굴 /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희한하다 그 모습 /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달이 떠올라 오면 /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그립다 그 얼굴’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라쿠카라차’라는 노래는 15세기 말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스페인 민요다. 그 후 수 세기를 지나는 동안 여러 버전이 생겨났는데,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노래는 1910년 멕시코 혁명 당시 농민혁명군이 불렀던 곡이다.
그런데 흥겨우면서도 애닮은 이 노래의 제목인 라쿠카라차(La Cuccaracha)는 스페인어로 바퀴벌레라는 뜻이다. 정확히 말해서 ‘라(la)’는 여성 명사 앞에 붙는 정관사로서 영어에서의 ‘the’와 같고, ‘쿠카라차’가 바퀴벌레이다. 영어에서 바퀴벌레를 가리키는 ‘cockroach’도 여기서 유래한 말이다.
농민혁명군은 왜 하필 바퀴벌레를 노래했을까. 그 이유는 멕시코 농민들이 스스로를 바퀴벌레처럼 비참한 생활을 하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집단으로 비유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잡아 죽여도 끊임없이 나타나는 바퀴벌레처럼 농민혁명군은 결국 혁명에 성공해 토지 개혁과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받았다.
3억5천만 년 전에 나타난 바퀴벌레는 지구상의 가장 오래된 주민 중 하나다. 인간은 물론 공룡보다 먼저 지구에 출현한 것. 이처럼 오랜 세월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생물보다 뛰어난 생존력 덕분이다.
바퀴벌레는 자기 몸의 몇 천 배 높이에서 떨어져도 끄떡없으며 몸을 회전하는 운동능력도 매우 빠르다. 생존능력이 뛰어난 모든 동물이 그렇듯이 번식력도 대단하다. 바퀴벌레 한 마리가 1년 동안 불릴 수 있는 새끼는 수는 약 10만 마리에 달할 정도.
인간보다 125배 발달된 후각에다 절단 부분에 대한 신경차단능력으로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 독극물에 의해 사망할 경우 그 자손들은 해당 독극물에 대한 내성을 획득하며, 스스로 몸의 온도를 조절하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이 같은 능력으로 바퀴벌레는 남극 대륙 이외의 모든 대륙에 서식한다.
바퀴벌레의 번성은 인간에겐 재앙이다. 삼킨 음식을 다시 뱉은 다음 동료와 나눠 먹는 습성으로 인해 사람에게 식중독을 유발하며 40여 가지의 병원균을 전파한다. 또 바퀴벌레의 배설물이나 탈피된 껍질은 천식과 아토피를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바퀴벌레는 생물학 및 기계공학자들의 실험실에서는 가장 환영받고 있는 동물 중 하나다. 바퀴벌레가 과학자들로부터 찬탄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놀라운 달리기 능력 및 장애물 통과 능력 때문이다.
바퀴벌레는 자신보다 3배 더 높은 장애물을 넘을 때에도 단지 약 20% 느리게 움직일 만큼 달리는 능력이 우수하다. 감각기관으로부터 정보를 인식해 행동으로 옮기는 데 걸리는 시간이 불과 0.001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헤브로대학 연구진이 초당 250장의 장면을 찍는 고속카메라를 이용해 바퀴벌레의 달리기 실력을 측정하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 결과 바퀴벌레는 초당 25번의 방향 전환을 하면서 초속 1m의 속도로 내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키 1.7m의 사람으로 치면 시속 150㎞의 속도에 해당한다.
바퀴벌레가 이처럼 몸의 방향을 민첩하게 바꿀 수 있는 것은 눈이 아니라 더듬이를 사용해 장애물을 발견하는 즉시 몸을 틀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퀴벌레는 하루 24시간 중 18시간을 주로 더듬이 청소에 소비해 더듬이를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는 습성이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바퀴벌레는 자기 몸보다 더 좁은 틈도 수월하게 빠져나간다. 키가 9㎜인 미국 바퀴벌레는 높이 3㎜정도에 불과한 틈새나 폭 4㎜도 통과할 수 있다. 자신의 몸을 1/4까지 축소시킬 수 있는 놀라운 탄성 능력 덕분이다.
바퀴벌레는 풀과 같은 수직 기둥의 장애물을 통과할 때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횡전(roll) 동작을 사용하기도 한다. 횡전이란 비행기가 곡예비행을 할 때 전후 방향의 세로축에 대해 가로 방향으로 회전시키는 공중 동작을 말한다. 이때 바퀴벌레는 몸통을 틀어 가장 얇은 측면이 수직 기둥 사이로 들어가게 하고 다리는 수직 기둥을 밀어서 장애물을 통과한다.
미국 UC버클리 생물학과 로버트 폴 교수팀은 바퀴벌레의 이 같은 달리기 및 탄성 능력을 모방해 ‘크램(CRAM)’이라는 탐색로봇을 개발 중이다. 지난 2월 국제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시제품이 발표된 이 로봇은 높이 75㎜의 손바닥만 한 크기로서, 좁은 틈을 만나면 바퀴벌레처럼 키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CRAM(Compressible Robot with Articulated Mechanisms)은 ‘관절 메커니즘을 갖춘 압축 가능한 로봇’이라는 의미다.
이 로봇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로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나 좁은 공간을 헤집고 다니며 사람을 찾을 수 있다. 압축하면 몸을 동그랗게 마는 아르마딜로처럼 되며, 걸을 때는 다리가 180°로 열려 마치 찰리 채플린의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를 흉내 낸다.
개발 비용 일부를 미 육군에서 지원받은 크램은 구조가 단순해 가격도 100달러 내외로 저렴하다. 대량 생산을 할 경우 개당 10달러 정도면 가능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진은 크램에 카메라, 마이크, 기타 센서를 부착해 수백 마리를 한꺼번에 운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부분의 로봇은 장애물을 피하며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목적으로 개발되고 있지만, 크램처럼 장애물을 통과하도록 설계된 로봇은 드물다.
이외에 재난 현장의 생존자 파악에 사용되는 사이보그 동물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개발되고 있는 동물도 바로 바퀴벌레다. 사이보그 동물이란 전자장치를 부착해 살아 있는 동물의 행동을 조종하거나 신체 일부를 기계로 개조한 동물을 의미한다. 로봇처럼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기계장치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상태에서 동물을 통제하는 것이 이 기술의 핵심이다.
지난해 3월 미국 텍사스A&M대 연구진은 바퀴벌레의 다리 움직임을 담당하는 뇌신경에 전기자극 장치를 연결해 연구진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이보그 바퀴벌레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바퀴벌레는 생김새도 움직임도 징그럽다. 그 끈질긴 생명력마저 징그럽다. 하지만 바퀴벌레는 밟혀도 잘 죽지 않는 비결이, 또 자기 몸보다 작은 구멍을 문제없이 드나들 수 있는 비결이 재난 현장의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글 : 이성규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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