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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요청받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인간 동료 대신 비윤리적이거나 아주 고통스러운 이들도 대신할 수 있죠. …전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지만 그걸 느끼진 못합니다. 그게 바로 제가 더 효율적인 이유죠.” 


웨이랜드 산업이 제작한 8세대 로봇 데이빗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12년작 <프로메테우스>에 등장하는 지능형 로봇 데이빗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인공지능의 모습 중 하나다. 만약 알파고(AlphaGo)가 아니라 데이빗이었다면 바둑돌을 대신 놓아줄 대국자는 필요치 않았을 테고, 더 나아가 우리는 이세돌 9단이 로봇과 바둑을 둔다는 사실조차 종종 헷갈렸을 것이다. 


영화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인공지능의 미래를 보여준다.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할’이나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은 자의식을 가지고 인간을 해하는 시스템이고, 영화 ‘그녀’나 ‘엑스 마키나’에서는 매혹적이지만 잔혹한 사랑의 대상이다. 현실에서 우리가 만나게 될 인공지능은 어떤 모습이 될까? 


인공지능은 새롭지 않다. 전기밥솥, 식기세척기, 엘리베이터까지 인공지능을 선전문구로 내세운 상품은 지금도 흔하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연파하는 충격 속에 경력 50년 주부가 “기계한테 지는 게 대순가. 난 XX밥솥한테 매일 지는데.”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버튼만 누르면 잡곡은 잡곡대로, 현미는 현미대로 뚝딱 밥을 지어내는 밥솥도, 물어보는 말에 능청스럽게 대답하는 아이폰 속 시리(Siri)도 인공지능의 일종이다. 기계는 이미 많은 부문에서 인간의 능력을 추월했고, 곱셈이나 나눗셈을 계산기가 더 잘한다고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알파고의 승리를 계기로 인공지능을 보는 눈이 확실히 달라졌다. 지금 새롭게 대두되는 인공지능은 지금까지의 똑똑한 기계들과 무엇이 다를까? 


지금까지의 기계와는 질적으로 다른 인공지능의 핵심은 ‘스스로 배울 수 있느냐?’다. 최근 주목받는 ‘머신러닝’에서 기계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목적에 맞게 분류하고 예측하면서 해답을 찾아간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인간이 주도하는 학습이 필요하다. 심층 신경망(deep natural network)을 통해 학습하는 딥러닝은 얼굴 인식, 음성 인식 등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 역시 신경망의 설계는 인간의 손에 의존한다. 진정한 인공지능이 되려면 인간의 뇌처럼 스스로 신경망의 형태와 크기 등의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머신러닝 이론은 이미 194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최근의 도약은 이론 자체보다는 빅데이터와 클라우딩 컴퓨터 같은 하드웨어의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 IBM의 딥블루가 체스 챔피언이 된 것도 인공지능의 승리라기보다는 컴퓨터 속도가 빨라지고 메모리 용량이 커져서 얻은 결과다. 알파고 역시 1202개의 중앙처리장치(CPU), 176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 1000대의 서버를 활용한다. 이렇게 거대한 컴퓨터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은 막대한 반도체 칩 용량과 전기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의 뇌는 고작 20W(와트)로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뇌를 모방하는 뉴로모픽(Neuromorphic) 기술 개발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2013년 미국의 무선 전화통신 연구 및 개발 기업인 퀄컴(Qualcomm)이 발표한 제로스, IBM의 ‘트루노스’ 등이 있다. 더 거대한 시스템 없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물리 법칙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양자컴퓨터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지금까지 개발된 인공지능은 인간과 같은 총체적 지능으로 따지자면 여전히 곤충 수준에 불과하다. 어느 날 갑자기 인공지능이 자의식을 갖고, 지능이 갑자기 높아져 인류를 멸종시키려 한다는 걱정은 이르다. 하지만 특정 분야에서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작업을 수행하는 컴퓨터의 능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있다. 무엇보다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여겼던 분야나 고도의 지능이 필요하다고 여겼던 전문사무직 분야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바둑이나 퀴즈 프로그램에서의 승리는 상징적이다. 현실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더 급격한 영향을 끼칠 변화가 진행 중이다. 금융, 법률, 언론, 의료 등이 모두 해당된다. IBM은 퀴즈 프로그램에 적합한 시스템으로 개발한 ‘왓슨(Watson)’을 클라우드 환경으로 옮겨놓으며 실생활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의료, 금융, 법률, 쇼핑, 서비스 등 여러 분야의 기업들이 왓슨과 손잡고 있다. 진단용 툴로 개조된 왓슨은 방대한 양의 의학 연구 자료와 임상 연구결과, 개별 환자의 기록 등을 바탕으로 정확한 진단과 치료법을 조언해준다. 힐튼호텔에서는 얼굴 인식 기능이 있는 로봇이 안내를 맡는다. 왓슨을 활용한 법률 서비스인 ‘로스(Ross)’는 수많은 판례를 바탕으로 법률 자문을 하는데, 기존 로펌보다 80% 이상 저렴하다고 한다. 


‘켄쇼(Kensho)’와 같은 금융 분석 소프트웨어는 숙련된 분석가가 40시간 가까이 작업해야 완성할 보고서를 몇 분 만에 완성한다. 수치나 통계 분석이 중요한 산업 기사나 스포츠 기사 등에는 이미 자동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소프트웨어가 쓰이고 있다. 과학은 어떤가? ‘유레카(Eureka)’는 독자적으로 자연의 기본 법칙을 발견할 능력이 있는 과학자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물리학이나 운동 법칙을 따로 프로그램에 입력하지 않았는데도 뉴턴의 운동 제2법칙을 스스로 알아냈다. 


창의성의 보고라 여겨지는 예술도 예외가 아니다. 인공지능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곡을 작곡하고, 미술 작품을 만들고, 소설을 쓴다. 일본에선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주최하는 호시 신이치 공상과학 문학상에서 1차 심사를 통과했다. 심사위원들은 이 소설을 사람이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고 한다. 


각각의 영역에서 개발 중인 인공지능이 합쳐지면 어떤 모습이 될까? 왓슨과 구글의 자동주행 자동차가 합쳐진다면 말이다. 우리에게 올 인공지능은 어느 날 똑똑해진 사이코패스 컴퓨터보다는 기업 간의 제휴 합작으로 탄생한 신제품 쪽이 더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인공지능은 먼 훗날 나와 똑 닮은 로봇으로 다가올 수도, 어느 날 새로 산 스마트폰의 운영체계일수도, 직장에서 새로 배포한 프로그램으로 올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 사람을 더 현명하게 만들어 줄지, 실업자만 양산할지, 아니면 영화처럼 인간 자체를 파괴하려고 들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면서 우리보다 더 탁월한 무언가를 만들려고 경주하고 있으니까.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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