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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브리짓은 데이트 중에 있을지도 모르는 핑크빛 일탈을 위해 섹시한 팬티를 입을 것이냐, 아니면 툭 튀어나온 똥배를 감추기 위해 체형 보정용 속옷을 입을 것이냐를 두고 고민했다.실제 이 영화에서 브리짓 역을 맡은 배우 르네 젤위거는 이 역을 위해 체중을 10킬로 이상 불려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들의 주요 관심사항은 젤위거가 일부러 체중을 찌운 것보다는 젤위거가 과연 예전 체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살은 찌기는 쉬워도 빼기는 힘들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다음 영화 <시카고>에서는 그녀는 사람들의 우려를 잠재우고 살을 쫙 뺀 늘씬한 모습으로 다시 스크린 앞에 섰다. 르네 젤위거 같은 경우는 자신의 일을 위해 극단적으로 체중을 조절한 경우지만, 요즘 들어 비만 탈출에 대한 열풍은 말 그대로 ‘열풍’에 가까울 정도로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이렇게 비만이 증가하는 이유는 체내에 과다한 에너지가 들어오면 우리 몸은 이 에너지를 지방으로 바꾸어 언젠가를 대비해 저장해 놓으려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저장된 지방은 체내의 포도당과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보다 사용 순위가 훨씬 더 낮다. 왜 우리 몸은 이런 시스템을 갖게 되었을까? 먹고 남는 건 체내에 쌓아두지 말고 그때그때 배설시키는 시스템이었거나 지방부터 에너지로 사용하는 시스템이었다면 비만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보다 한정된 육체 속에 많은 에너지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에너지 효율이 높은 방식을 선택해야 했고, 생존을 위해 이 지방은 아끼고 아꼈다가 제일 마지막에 사용하는 시스템이 진화적으로 유리한 전략이었을 것이다. 또한 여성의 경우, 임신과 출산에 상당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므로 복부와 둔부에 지방을 쌓아두는 것은 집단 존속을 위한 절대적인 몸부림이었다.
이렇게 지방 친화적으로 발달된 우리 몸. 수백만 년 동안 유전자에 고착되어 온 성향을 겨우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바꿔버리는 것은 무리이다. 진화와 환경 적응은 눈에 보일 만큼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급작스럽게 바뀐 환경에 우리 몸은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비만이, 단지 지방 세포가 남들보다 좀더 많다는 이유 하나가 직접적으로 건강에 해를 끼친다는 사실 자체가 과도기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오랜 세월 훨씬 더 윤택하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살아왔다면, 그에 적응하여 뚱뚱하다는 것이 큰 위협으로 작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유전자는 또 한번의 환경 적응과 진화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글: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과학 읽어주는 여자’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