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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체형을 기억하는 속옷, 날씨가 더워지면 자동으로 말려 올라가는 셔츠, 뜨거운 물만 부으면 언제나 원상 회복이 가능한 자동차가 있다면? 흔히 생명체 고유의 것으로만 생각되던 ‘기억’이 이젠 금속에게도 해당 되야 할 듯 하다. 이는 바로 ‘형상기억합금’ 때문이다. 일반적인 금속은 탄성 한계를 넘어선 변형이 가해지면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지 않지만, 형상기억합금은 어떤 특정 조건만 만족하게 되면 금속 자체가 갖는 원래의 형상을 기억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이와 같은 형상기억합금의 비밀은 바로 원자의 배열에 있다. 보통 금속은 구부리거나 늘이거나 열을 가해도 원자 배열이 바뀌지 않지만, 형상기억합금은 온도를 높이거나 냉각하면 배열 자체가 바뀌게 된다. 즉 고온에서는 강철을 담금질 할 때 형성되는 조직구조 중 하나인 오스테나이트상(相)이라고 하는 원자 배열 구조를 갖지만, 냉각하면 마르텐사이트상(相)으로 변한다. 마르텐사이트상은 외부의 힘에 의해 변형이 가능하므로 이때 원하는 물건의 형태를 만든 뒤, 고온에 가열해 오스테나이트상으로 그 모양을 기억시킨다. 그러면 뒤에 어떤 다른 변형이 있다 하더라도 열만 가하면 항상 오스테나이트 상으로 돌아와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게 된다.
한때 우주선이나 산업용으로만 쓰이던 형상기억합금은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여성용 브래지어로 세탁 과정에서 비틀어져도 체온이 닿으면 다시 그 사람의 체형대로 변형된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형상기억합금이 원래의 형상을 회복할 때 큰 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이용해 기계부품을 죄거나, 체온에 의해 치아를 단단히 묶어주는 치열교정용 와이어에 사용되는 등 형상기억합금의 응용분야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형상기억의 효과가 확인된 합금은 20여 가지로 니켈-티타늄 합금, 구리-아연-알루미늄 합금 등이 있다. 하지만 형상기억합금은 만들기가 쉽지 않아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 단점이다. 이로 인해 합금보다 더 값싼 형상기억 플라스틱도 개발되고 있다. 만들기도 쉽고 값도 합금의 10분의 1 이하로 싼 형상기억 플라스틱은 현재 주로 완구, 용기, 자동차부품, 자기기록 재생장치 등에 이용되고 있다.
형상기억합금은 아주 우연한 계기로 탄생했다고 한다. 한 연구원이 담뱃불을 금속에 대자 꿈틀거리는 현상을 목격해 이를 연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개발된 것이 형상기억합금이라는 것이다. 꼭 이와 같은 경우는 아니더라도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일상생활에서의 세밀한 관찰로 인해 역사 또한 성큼 성장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가 있다. 그러고 보면 위대한 발견은 멀리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주위 것들에 대한 섬세한 관심 및 관찰, 바로 이 것이 위대한 발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과학향기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