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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단 외우면 정말 수학을 잘 할까?



방과 후의 나머지 공부를 경험해봤다면, 그 첫 경험은 대개 구구단 때문일 것이다. 나머지 공부를 피했다 하더라고 인생 최초의 좌절 혹은 시련으로 구구단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시절을 보냈고, 지금껏 생생하게 떠올리고 있다면 요즘 초등학생들에게 불어 닥친 19단 열풍 또한 예사롭게 보이지는 않을 게다.IT 강국 인도에서는 19단이 상식이라는 류의 보도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19단을 쉽게 외울 수 있다는 교재와 교구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19단 외우기 시범학교가 생겼다는 말도 들린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이 땅의 부모들은 “우리 아이만 19단을 못 외우면 뒤 처지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에 더 분주해졌다.지난해부터 시작된 19단 열풍은 일단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다. 수학자들이 나서서 수학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 


하지만 쏟아져 나오는 교재와 엇갈린 언론의 보도 때문에 애가 타는 건 부모들 뿐이다. 




그렇다면, 19단은 정말 외워야 하는 것일까? 우선 19단 옹호론자들이 주장하는 19단의 좋은 점을 살펴보자. 19단 옹호론자들의 주장은 19단을 통해 수의 성질과 구조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고 연산능력과 수리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결국 수에 대한 사고가 확장된다는 것이다. 구구단의 원리인 ‘동수누가(같은 수가 더해지는) 원칙’을 이해할 수 있으며, 분배 법칙에 대한 이해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1단의 경우 11×11=(10+1)×11=10×11+1×11=121의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19단을 알면 큰 수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지기 때문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수학에 대해 거부감이 줄어든다는 주장도 나온다. 외울 분량이 많아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곱셈의 환원성(11×19=19×11)을 들어 실제로 외워야 할 분량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한다. 


19단 옹호론자들도 무조건적인 암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기계적인 암기는 좋지 않지만, 암기를 통해 수에 익숙해지고 원리 이해가 촉진되는 긍정적인 측면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19단 암기가 창의적인 사고를 막는다는 것을 내세운다. 연산기술은 수학의 일부분 일뿐 본래 수학은 개념과 사고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19단에 대한 강조가 자칫 ‘수학=암기’로 여겨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구구단을 외우기도 벅찬 아이들에게 19단 암기를 요구하는 것은 자칫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한다. 




무엇보다 19단이 아이들의 수학 능력 향상을 위한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라, 아이들의 실력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어른들의 이기성과 상업주의의 결과라는 점 때문에 반대한다. 19단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 능력이 아니라 저학년에서 당장 높은 점수를 딸 수 있는 기술 일뿐이고, 언론의 부추김과 그것에 흔들리는 부모들, 이를 이용해 손쉽게 교재를 만들어 팔려는 상업주의가 만들어낸 일시적인 유행이라는 주장이다. 




더욱이 19단은 쓰임새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19단을 외우더라도 324×21에 19단을 적용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50단, 100단까지 계속 확장해 외울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어디까지 외우느냐 보다 원리 학습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수학자들은 구구단을 먼저 외운 아이와 원리를 이해한 아이는 처음에는 전자가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의 유형이 달라지거나 심화 학습에 이르면 엄청난 차이를 보이게 된다고 말한다. 




곱셈이란 같은 수 몇 개를 덧셈한 것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연산법이다. 구구단이나 19단이나 모두 동수누가의 원리를 이용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십진법 하에서 9단까지 적용할 수 있으면 19단이든 100단이든 모두 적용 가능하다. 


그렇다면 구구단도 굳이 외울 필요가 없을까? 원칙적으로는 구구단이 없이도 덧셈 기술을 이용해서 곱셈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3×5는 3을 5번 더한 결과와 같다. 3×5=3+3+3+3+3=15. 19단에 속하는 더 큰 수도 원리는 같다. 12×13은 12를 13번 더한 결과. 즉, 12×13=12+12+12+12+12+12+12+12+12+12+12+12+12=156 이다. 


물론 이 원리를 이해하고 있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큰 자릿수의 셈을 하는 데는 엄청난 불편이 따른다. 그래서 구구단은 최소한의 암기로 곱셈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도구로 고안된 것이다. 




구구단의 역사는 이미 2천년이 넘는다. 기원전후 중국에는 이미 구구단을 소개한 수학 고전인 ‘구장산술’이 있었으며, 우리나라도 이미 고려시대에 구장산술을 외워 푸는 수학시험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구구단 암기는 고대부터 연산 능력을 키우기 위한 필수 과정으로 이어져왔다. 




하지만 이제 빠른 암산 능력이 없어도 계산기나 컴퓨터로 얼마든지 대신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빠른 셈보다는 원리를 이해하고 사고를 증진시키는 일이 더 중요한 시대임이 분명하다. 그렇다 해도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구구단은 여전히 필수적인 교육 과정으로 남아 있다. 원리 학습이 중요하지만, 구구단 역시 그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구구단의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에 19단은 논쟁의 대상이 된 것이다. 구구단만 외워도 충분하다는 입장과 이왕에 외우는 구구단, 조금 더 늘려서 19단까지 외우면 더 좋은 것 아니냐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셈이다. 알아서 나쁠 것 없다는 쪽에 무게를 둔다면 시도해볼 수도 있는 일이다. 다만,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필수’가 될 필요는 없다. 




9단이냐, 19단이냐 하는 암기량에 관한 논쟁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 구구단이건 19단이건 무엇 때문에 외우는지, 어떻게 쓰기 위해 외우는지 본래의 목적을 잊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곱셈은 수학의 도구이다. 도구는 쓰는 사람이 편하고 몸에 맞아야 하는 법이다. 구구단과 19단을 둘러싼 논쟁도 이러한 생각을 갖고 받아들이면 좀 더 수월하게 풀리지 않을까? (과학향기 편집부)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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