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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성장통을 겪는다.




“저 배는 왜 배가 터졌을까?” 




어린 시절, 배나무에서 배가 하얀 배를 드러내놓고 패잔병처럼 나무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며 벌레를 먹은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처참한 몰골이 됐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전남대 김월수 교수가 쓴 ‘과일나무 이야기’라는 책을 보면 나무들도 인간과 똑같이 스트레스를 받고, 충치도 앓으며, 사춘기도 겪는다는 내용이 있다. 

심지어는 고혈압과 빈혈증세도 나타내며, 한술 더 떠 인접한 나무와 진한 사랑도 나눈다고 한다. 세상 모든 만물이 저마다 오묘한 삶의 방식들을 가지고 있듯이 나무의 세계도 인간 과 비슷한 성장기 및 그에 따른 미묘한 갈등과 번민도 겪는다는 것이다. 때로는 산전수전 다 거친 해탈한 노인과 같은 모습으로, 때로는 세심한 관심이 요구되는 어린아이와 같은 그런 모습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나무의 사춘기는 언제일까? 


또 그 사춘기를 그냥 방치해 두면 나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일단 과일나무를 예로 보면, 3-4년생까지는 적당히만 살펴도 과일을 주렁주렁 열며 그럭저럭 제 몫을 다하지만 7-8년차가 되고부터는 특별한 관심을 쏟아주지 않으면 노골적인 반항이 시작된다는 것. 


그 원인을 살펴보면 지상부(줄기+신초)와 지하부(뿌리)의 균형파괴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유목기에는 지상부 수관 확대가 가능하여 뿌리의 세력 확대와 균형을 맞춰가지만 일단 7-8년생이 되면 신초가 인접한 나무와 서로 맞닿기 때문에 이때부터 강력한 가지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시기에 뿌리의 세력이 계속 확대되는 것과는 반대로, 가지의 세력은 강력한 가지치기로 제한을 받으므로 신초가 제대로 자랄 수 없게 되므로 결국 과실 발육이 부진할 수밖에 없고 병해충 발생도 심해지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사춘기 아이를 다루듯 나무에게도 각별한 애정을 쏟을 필요가 있다. 일단 지나치게 강해지지 못하도록 질소를 적게 사용함은 기본이고 단근(斷根)은 물론 환상박피를 실시하여 잎에서 합성된 당질이 뿌리로 내려가지 못하게 인위적으로 차단하여 신초와 잎, 과실 등에 재분배되도록 하여 지하부와 지상부의 균형을 유지 시켜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도 안 되면 뿌리째 뽑아 이사를 시켜주는 수밖엔 도리가 없다. 새로운 토양이 나무의 마음에 들면 그제야 요란한 사춘기의 반항이 조용히 종식되는 것이다. 


앞서 얘기한 배나무의 배가 터지는 것도 결국 같은 원리인 셈이다. 


이는 과일과 잎의 싸움인데, 생육기의 과일나무는 1주일 정도 비가 오지 않으면 물 부족으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로 과일과 잎 사이에 갈등과 알력이 조장되어 치열하게 물 빼앗기 싸움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 싸움은 잎의 백전백승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싸움에서 패한 과일은 크기도 작고 당도도 떨어지고 착색 또한 불량해지는 것이다. 

그러다 비가 오면 잎에 패한 채 갈증에 지쳐 있던 과일들이 정신없이 한꺼번에 물을 들이마시고는 그대로 배터진 붕어처럼 하얀 배를 까뒤집고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장렬히 전사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열과현상’이인데, 과일농사의 가장 기본이 이러한 물싸움을 막는 것이라는 말은 이러한 열과현상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충치를 앓듯 나무도 이와 유사한 증세가 나타난다. 바로 뿌리가 상하는 것이다. 

나무의 뿌리는 굵은 뿌리, 중간 뿌리, 가는 뿌리 등 각 뿌리마다 각자의 역할들이 있는데 이 중 실뿌리와 뿌리털이 바로 인간의 치아와 유사한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실뿌리가 썩는다는 건 충치가 생긴 것과 같은 현상이며, 실뿌리와 뿌리털이 까맣게 썩어 들어가면 충치의 고통과 후유증처럼 나무도 스스로 고통을 겪으며 결국 과실의 수량이 줄고 작아지며 일찌감치 잎과 껍질이 떨어져 나가게 되고 병충해도 심해지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고개 숙인 남성들을 위한 비아그라처럼, 과일나무에게도 특수처방이 있다. 

과일나무 최고의 사명은 역시 고품질의 과일을 많이 여는 것인데, 영 그 기능이 신통치 못한 나무라면 뽑아 버리지 않는 이상 특수처방이 필요할 것이다. 

이 특수처방은 바로 뿌리, 특히 세근(細根)을 잘 발육시켜 양분과 수분을 적절하게 흡수케 하는 것이다. 이른바 정성 더하기 과학적 농법인 것이다. 




과학적 농법이 발달한 미국, 유럽, 뉴질랜드 등 이른바 선진 농업 국가들에서는 10ha당 2,150kg 정도의 과일밖에 수확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농가와는 달리 3,500kg을 상회하는 농장이 많고 포도와 배도 우리나라에 비해 3배 이상을 수확하는 주산단지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만큼 그 나라 나무들의 단위당 과일 생산량이 많다는 얘기다. 결국 나무도 인간이나 다를 바 없이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잘 보살펴 주면 건강하게 자라 풍성하고 건강한 과실로 농부에게 보답하는 것이며, 사춘기든 충치든 결국 무관심하게 방치하면 인간이나 나무나 모두 삐딱하게 엇나가기 마련인 것이다. 


이처럼 나무의 생장이나 인간의 성장에는 나름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나무와 인간의 불가분의 관계, 또한 우리 인간이 나무로부터 휴식과 안정을 얻는 것과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한편, 서로 엉켜서 각자의 열매를 맺고 사는 두 그루의 나무를 ‘연리지’라 부르는데, 이는 인접해 뿌리를 내린 두 나무가 자기만 살겠다고 버둥거리게 되면 둘 다 죽을 수밖에 없음을 알고 의기투합해 한 몸으로 붙어서 살아가는 현상을 말한다. 


연리지를 인간의 눈으로 언뜻 보면, 서로 열렬히 사랑해 붙어사는 사이좋은 연인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또, 이러한 연리지와는 다르지만 낮엔 활짝 폈던 잎이 밤만 되면 반으로 딱 접혀 마치 사이좋게 붙어 자는 듯 보이는 자귀나무 같은 나무들도 함께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고 할 수 있다. 


전혀 다른 것 같지만,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는 인간과 나무. 서로 보듬고 살아야 하는 인간들처럼 나무도 숲을 이루어 살아가는 존재다.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 숲’이라는 말처럼, 인간들끼리 혹은 나무들끼리 만이 아닌 인간과 나무가 함께 공존하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과학향기 편집부)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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