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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6개 부문에서 시상하는 노벨상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히며 이중 과학 분야는 노벨 물리학상, 노벨 화학상, 노벨 생리의학상이 있다. 따라서 각 분야의 당대 최고 과학자들은 당연히 노벨 과학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저명한 과학자나, 과학기술의 발전에 획기적인 업적을 이룩한 인물 중에서도 노벨 과학상을 받지 못한 이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뛰어난 과학자들이 노벨 과학상을 받지 못한 이유로 ‘노벨상은 생전의 인물, 즉 당시에 살아있는 사람만 받을 수 있고 사후에는 수여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다. 이것은 처음 노벨상 제도가 만들어질 무렵에 갈릴레이(Galileo Galilei), 뉴턴(Isaac Newton), 패러데이(Michael Faraday) 등 이미 고인이 된 대가들이 계속 노벨 과학상을 ‘싹쓸이’함으로써 당대의 과학자들에게는 차례가 가지 않을지도 모르는 폐단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인이 수상한 경우로는,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된 직후 시상식 이전에 사망한, 단 한 번의 예외가 있을 뿐이다.
그의 참전을 간곡히 만류했던 스승 러더포드(Ernest Rutherford)는 영국의회에 편지를 보내서 아까운 과학 인재들이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것보다는 대학이나 연구소 등지에서 과학 연구를 계속하는 것이 나라에 더욱 큰 보탬이 된다는 것을 호소하였다. 이를 영국의회가 받아들였고 다른 여러 나라들에도 퍼졌는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시행되고 있는 이공계 대체복무제도의 기원이라고 한다.
공헌을 인정받기 전에 사망하는 바람에 노벨상을 받지 못한 다른 사례로는 나일론의 발명자로서, 소속사인 뒤퐁(Du Pont)이 제품을 공개하기 전에 자살로 삶을 마쳤던 캐러더즈(Wallace Hume Carothers; 1896-1937), 그리고 X선 회절사진으로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히는데 결정적 공헌을 한 여성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Elste Franklin; 1920-1958) 등을 들 수 있다.
노벨 과학상이 여성을 차별하거나 인종적, 정치적 편견 등으로 인하여 수상자 선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는데,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 1878-1968)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여성과학자로서 퀴리 부인, 즉 마리 퀴리(Marie Curie)처럼 두 차례나 노벨 과학상을 받은 이도 있지만, 리제 마이트너는 오토 한(Otto Hahn), 프리츠 슈트라스만(Fritz Strassman)과 함께 핵분열의 원리 및 우라늄 연쇄반응의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탁월한 업적을 이루고도 끝내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반면에 공동 연구자였던 오토 한은 1944년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리제 마이트너는 훗날 미국 원자력 위원회에서 주는 ‘엔리코 페르미상’을 오토 한, 슈트라스만과 함께 공동수상했고, 새로 발견된 109번째 원소의 이름이 그녀를 기념하여 마이트네리움(Meitnerium)이라고 명명됐는데 이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중성자별인 펄서를 발견하고 전파천문학을 발전시킨 공로로 1974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안토니 휴이시(Antony Hewish; 1924~) 교수의 경우 역시 그의 지도 학생으로서 펄서를 처음 발견했던 여성 과학자 조셀린 벨을 수상에서 제외해 여성 차별이라는 논란이 거세게 일어난 바 있다.
노벨상 수상자 선정위원회의 성향이 수상자 선정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물리학 같은 분야를 보더라도 이론물리학자보다는 실험물리학자들에게 더 유리하다는 것이 통설이다. 이와 관련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이후 최고의 이론물리학자로 꼽히는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박사가 왜 아직도 노벨상을 받지 못했느냐는 의문이 종종 제기된다. 물론 호킹은 ‘휠체어 위의 물리학자’로 널리 알려진 대중적 명성에 비해 그의 업적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할 수도 있겠지만, 아인슈타인 조차도 그 유명한 상대성이론은 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광량자 가설로 가까스로 노벨상 수상자 대열에 합류했을 정도이다. 양자역학의 단초를 제공한 막스 플랑크(Max Planck)도 오랫동안 ‘만년 후보’로 있다가 아주 뒤늦게야 노벨상 수상자가 될 수 있었다.
“노벨 수학상은 왜 없는가?” 하는 것은 해묵은 논쟁거리이지만, 실용기술이나 공학 분야의 공로자에게 줄만한 마땅한 분야도 없어서 발명왕 에디슨(Thomas Edison), 컴퓨터의 아버지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 등도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다. 무선전신의 발명자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 집적회로(IC)의 창시자 킬비(Jack Kilby) 정도가 공학적인 발명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천문학, 지구과학이나 다른 과학 분야 등도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우주팽창론을 제시한 저명한 천문학자 허블(Edwin Hubble), 사이버네틱스의 창시자 위너(Norbert Wiener) 등도 수상자 대열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오늘날의 과학 연구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거대 과학’이 보편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 분야 노벨상은 단체에게 수여되지 않고 최대 3인까지의 개인 수상만 고수되어 온 점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노벨과학상 수상 자체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태도는 물론 바람직하지 못하겠지만, 노벨상이 지니는 권위와 그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노벨과학상 제도 역시 시대적 조류에 맞추어 개편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글 : 최성우 -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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