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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공에 묻힌 침의 비밀
1976년 동대문 운동장에서 벌어진 전국 중학교 야구선수권 대회 결승전. 투수가 야구공에 침을 뱉어 바른다. 한두 번이 아니다. 얼마나 침을 많이 뱉는지 관중이 보기에도 만지고 싶지 않을 정도다. 붉은 유니폼의 투수가 공을 던지자 푸른 유니폼의 타자는 알루미늄 방망이를 힘껏 휘둘렀다. 3루 측 폴대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나 관중석으로 날아가는 파울볼이다. ‘딱’ 소리가 나자 누군가 뛰기 시작한다. 이때 뛰어가는 사람은 흰색 유니폼을 입고 있다. 수비수도 아니고 타자도 아니다.
요즘 야구장에서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런데 그때 파울볼을 잡으러 뛰어간 사람은 누굴까? 당시 야구장에는 볼 보이(ball boy)라고 하는 소년들이 있었다. 볼이 방망이에 맞는 순간 파울볼의 방향을 직감하고 관중석으로 달려 들어가 파울볼을 주워오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파울볼을 관중에게 주는 것보다 볼 보이를 고용하는 것이 더 저렴할 정도로 야구공 가격이 그리 만만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아니다. 미국 메이저 리그가 부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흙 한 번 묻었다고 공을 바꿀 정도로 낭비벽이 있지는 않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공중화장실을 갖추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들보다 더그아웃 바닥에 연신 침을 뱉어대는 그들이 더 위생적일 것 같지는 않다. 여기에는 경제적이거나 위생적인 이유가 아니라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공을 침으로 범벅한 후 던지면 타자 바로 앞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변화구가 된다. 이 변화구를 스핏볼(spitball)이라고 한다. 침이 변화구를 만드는 원리는 무엇일까? 침은 표면을 매끈하게 해 준다. 매끈하면 저항이 더 크다. (잘 믿기지 않으면 골프공을 생각해 보시라.) 이 저항의 차이가 변화구를 만든다. 그런데 침을 아무리 뱉어도 공의 모든 면에 골고루 바를 수는 없다. 따라서 공의 표면의 저항이 일정하지 않으므로 타자가 공의 궤적을 예측하기 어렵게 된다. 스포츠는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겨루어야 한다. 따라서 1920년대부터 스핏볼은 금지되었고 투수는 이제 그의 위생관념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야구공에 침을 뱉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공에 입김을 불어 넣어서도 안 된다. 최근에 벌어진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 일본-미국 전. 일본이 3-1로 앞서고 있던 6회 말에 일어난 사건이다. 교체 투입된 투수는 첫 타자를 삼진으로 잡았고 첫 타석에 홈런을 친 타자를 두 번째 타자로 상대하게 되었다. 볼카운트는 원 스트라이크 투 볼. 날씨가 추웠다. 투수는 손을 입에 갖다 대고 입김을 불었다. 그 순간 볼이 선언되었다. 결국 포볼로 진루. 세 번째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투수는 같은 동작을 되풀이 했다. 공을 던지기도 전에 원 볼. 원 스트라이크 쓰리 볼까지 몰린 투수는 결국 실투하여 좌중월 2점 홈런을 맞고 만다. 이른바 ‘입김 사건’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협회가 함께 펴낸 ‘공인 야구규칙’에도 “투수는 공에 이물질을 묻히거나 공에 흠집을 내거나 공·손·글러브에 침을 바르지 못하며, 이물질을 몸에 붙이거나 갖고 있으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스핏볼은 우리나라에서도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30년 전 중학야구 결승전에서는 투수가 어떻게 공에 침을 뱉을 수 있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번에 WBC 4강전에서 우리를 울린 일본 투수 우에하라의 주무기는 포크볼이었다. 회전하는 공은 회전력에 의해 부딪히는 공기들을 어느 정도 파헤쳐 주기 때문에 공이 쉽게 나아갈 수 있는데 반해, 포크볼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회전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래로 뚝 떨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우리 타자들이 우에하라의 공을 쉽게 공략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렇듯 야구에는 많은 물리적 원리가 숨겨져 있다. 그렇다면 물리 원리를 잘 안다면 야구를 잘할 수 있을까?
야구를 잘하기 위해서 이런 물리 원리도 잘 알아야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승엽 선수가 물리학을 잘 해서 홈런을 잘 치겠는가? 이승엽 선수가 아시아 최고의 홈런타자가 된 비결은 빠른 속도로 방망이를 휘두르는 손목 힘에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피나는 연습과 훈련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글 : 이정모 -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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