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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는 비록 허구의 문학이지만 예민한 어린이들을 상대하는 만큼 내용에 있어서는 진실에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읽어 왔고 사실로 믿어 온 동화책 속에는 많은 오류들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작가들이야 제한된 환경 속에서 동물들을 속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그저 재미있는 한 부분만 보거나 듣고서 동화로 엮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난 아이들에게 일단 읽어주고 “이 동화는 인간생활을 동물에 빗대서 표현한 것이지, 사실 동물들은 이렇다.” 라고 다시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면 오히려 동화 속 이야기 보다 더 재미있어 할 때도 있다. 다음 몇 가지 예는 내가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부연설명한 것을 옮긴 것이다. 


먼저 이솝우화 가운데 소가 되고 싶었던 개구리 이야기를 보자. 소만큼 큰 덩치를 갖고 싶었던 개구리는 뱃속에 바람을 불어넣다가 결국 배가 터져 죽고 만다. 작가는 인간의 헛된 욕망을 경고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구리 중 일부, 정확히 하면 수컷이 짝짓기를 위해 턱이나 입 양 옆의 울음주머니를 부풀려 소리를 낼 뿐 배를 부풀릴 수는 없다. 참고로 수컷 울음소리는 발성 기관인 후막에서 만들어져 울음주머니에서 증폭된다. 물이 차면 낮은 소리를 내고, 따뜻해지면 높은 소리를 내는 것이다. 만일 울음 주머니 없이 후두로만 소리를 내야 한다면 개구리는 금방 목이 쉬고 지쳐버릴 것이다.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 역시 속아 넘어가기 쉽게 되어있다. 하지만 동물들을 잘 관찰하면 진실이 보인다. 두루미의 식사형태를 자세히 보자. 부리 끝으로 꼭 집어서 고개를 들고 뒤로 기울여 넘긴다. 물도 부리에 용기처럼 담아서 목을 들어올려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가게 한다. 비록 여우의 ‘대접 스프’라도 얼마든지 부리로 조금씩 찍어서 먹을 수 있다. 더구나 이것이 불편하면 조금 실례가 될지 몰라도 부리를 옆으로 돌려서 한꺼번에 먹을 수도 있다. 오히려 두루미는 호리병 안의 음식을 먹는 것이 더 힘들다. 부리를 넣어 찍고 나면, 아니 부리가 벌어져야 음식이 집어 나오지, 오히려 꼭 끼어서 제대로 음식을 부리에 넣을 수가 없을 것이다. 

다음은 두루미 집에 한번 가보자. 호리병에 넣었다고 여우가 못 먹을 쏘냐. 바로 두발로 호리병을 붙들고 바닥에 깨고 그대로 핥아먹었을 것이다. 개나 여우나 일단 냄새 나는, 먹을 것을 주면 어떤 용기에 넣든 대부분 먹을 수 있다. 


개미와 베짱이(여치) 이야기는 인터넷에 보면 꽤 재미있는 주장들이 나온다. 그 주장들이 내 생각과도 거의 일치한다. 개미가 열심히 일한다지만 개미 중에 뼈 빠지게 일하는 일개미는 겨우 20%안팎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는 병정개미, 여왕개미, 숫개미이다. 이들은 일하지 않고, 배짱이 보다 더 빈둥대다가 순간(전쟁할 때, 교미할 때)만 기다린다. 더구나 개미는 월동이 가능한 곤충이다. 반면 베짱이의 운명은 어차피 한 여름 뿐이다. 그것이 그들 수명의 전부다. 그들의 죽음은 이 동화처럼 비참한 게 아니라 참으로 짧고 굵게, 후손을 남기고 끝낸다. 베짱이가 게으르다 하는데, 천만에, 날개를 비비며 소리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이솝의 시절엔 육체노동의 가치가 절대적이었던 모양이지만, 베짱이의 직업은 한마디로 예술가다. 그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수록 그는 후세를 잘 잇게 되고 세상 만물은 비로소 여름이 왔음을 알게 된다. 그러니 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심지어 밤낮없이 그의 일은 계속된다. 보기보다 많이 놀면서 일하는 개미보다 오히려 더 부지런하고 생산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이 이야기도 베짱이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다. 


반면에 동물생태학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는 이야기가 있으니, 바로 흥부전이다. 흥부전 원본을 보면 “칠산 조기 껍질 벗겨 두 다리를 돌돌 말고 오색 당사로 찬찬 감아 제 집에 넣었더니 십여일 지난 후에 양각이 완고하여 비거비래(飛去飛來) 노는 거동 보기가 장히 좋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칠산 조기껍질’은 붕대 대신, 잘 마른 살균 자연 재료라고 할 수 있고, ‘당사’ 또한 탄력있는 부드러운 실크사로 현대의 압박붕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섣불리 치료한다고 따로 두기 보다는 제집에 넣어 주는 게 새끼 동물들에게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이며, 새들은 뼈가 가늘고 연약하면서도 잘 붙는 지라 10여일 이면 충분히 회복된다. 수의사 입장에서 볼 때 이는 마치 작가가, 직접 체험한 듯한 완벽한 자연 치료법이다. 우린 그냥 제비다리 고쳐주고 박씨를 얻은 걸로만 대충 알고 있는 데, 동물들 구조하고 재활시키는 과정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단군신화의 이야기는 너무나 속이 들여다보이는 이야기다. 즉 일부러 곰을 조상신으로 만들려는 진한 의도가 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곰의 생태를 보면, 곰은 기본적으로 초식동물이자 잡식 동물이므로 마늘이든, 쑥(숙은 기호성이 높다.)이든 먹을 게 없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철저한 육식 동물인 호랑이는 죽었다 깨어나도 입에 안 댈 것들이다. 여기서 스코어는 1:0, 그리고 한반도의 곰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다. 그러니 지루한 동굴생활 100일 정도야 자기 겨울잠 자는 기간보다도 못하다. 반면에 호랑이는 겨울이라도 절대 한자리에 머무르는 법이 없다. 다시 2:0, 마지막으로 곰은 직립보행이 가능하고 새끼를 안고 다니기도 한다. 겨울잠을 자고 새끼를 안고 나오는 곰은 멀리서 보면 그대로 인간 여성의 형상이다. 그래서 3:0. 시합도 하기 전에 승부는 나 있었다. 단군신화는 신화이전에 우리나라 최초의 생태소설이라 칭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동물 생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동화 속 이야기를 이렇게 분석해 읽어나가는 것도 책을 재미있게 읽는 한 방법이다. 분명 이솝이나 안데르센도 이런 우화를 썼을 초기에는 혹시 박식한 누군가가 딴지를 걸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명해지고 나서는 또한 누군가 자기가 미처 몰랐던 진짜 사실들을 밝혀 주길 바랐을 것이라고 믿는다. (글 : 최종욱 ? 야생동물 수의사)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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