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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에 글씨를 쓴다 - 가능한거야?
여기는 일산 호수공원. 호수 주변에 설치된 장치가 움직이면서 잔잔하던 수면에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호수 가장자리에서 만들어진 물결이 서서히 합쳐지면서 수면에 ‘대한민국’이라는 글씨가 또렷하게 쓰인다. 공원을 방문한 사람들은 이 신기한 장면에 탄성을 지른다. 과연 물 위에 글씨를 쓰는 것이 가능할까?
그동안 물을 마음대로 제어한다는 것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상식을 깨뜨리는 일이 벌어졌다. 일본 오사카 대학의 시게루 나이토 교수와 미쓰이 조선의 아키시마 연구소 연구원들이 ‘아메바(AMOEBA, Advanced Multiple Organized Experimental Basin)’라는 장치로 수면에 글씨를 쓴 것이다. 아직은 조그만 풀에서 간단한 문자만 만드는 정도지만 곧 분수나 놀이공원 등에 활용될 예정이고 호수 위에서 여러 모양을 보여주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아메바는 직경 1.5m, 깊이 0.3m의 원형 물탱크에 50개의 파동 발생 장치가 달렸다. 비록 알파벳이나 간단한 한자를 15~20초 정도 잠시 나타내 보이는 정도지만 마술을 보는 것처럼 신기하다. 물 위에 글씨를 쓰는 이 놀라운 기계의 원리는 무엇일까?
기본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여러 개의 파동을 중첩시켜 합성파가 글자 모양이 되도록 조절한 것이다. 파동은 입자와 달리 한 위치에 여러 개의 파동이 동시에 존재하여 서로 보강되거나 상쇄된다. 아메바는 파동 발생기에서 만들어진 파동의 보강간섭과 상쇄간섭을 이용하여 글씨를 쓴다. 물론 정확한 글자 모양으로 파동을 만들려면 복잡한 수식이 동원되어야 한다.
우리 주변에서 푸리에 급수는 매우 다양하게 이용된다. 먼저 간섭현상을 이용하면 소음도 없앨 수 있다. 예를 들어 여객기 밖은 엔진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엄청나게 시끄럽지만, 여객기 안은 소음을 크게 느낄 수 없다. 또 경비행기 조종사나 수동 굴착기 기사는 소음을 줄이는 특수한 헤드폰을 끼는 덕분에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일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능동소음제어(Active Noise Cantrol)라 불리는 기술이 적용되었기 때문으로 비행기 엔진이나 굴착기에서 나는 소음과 같은 주파수를 가지고 위상이 반대인 소음을 발생시켜 소음을 없앤다. 즉 소음을 소음으로 없애는 것이다. 최근 출시되는 고급 차량에도 이러한 소음제거기가 부착되어 정숙한 주행을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푸리에 급수를 비주기 영역까지 확장시킨 ‘푸리에 변환’은 전파를 분석하는 데 사용된다. 고급 오디오 기기에 달린 LED 막대기는 연주되고 있는 음악을 주파수 별로 구분하여 세기를 보여 준 것이다. 이퀄라이저에서 보여주는 파동 모습은 주파수에 따라 파를 분리해 낸 것인데 이때 푸리에 수학이 사용된다. 주파수별로 파를 분리하면 사람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음성인식에도 사용할 수 있다. 목소리는 지문과 같이 고유한 것이라 ‘성문’이라 부르는데 주파수 별로 나누어 비교하면 차이점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또 푸리에 변환을 좀더 빠르게 수행할 수 있는 알고리즘인 ‘고속 푸리에 변환’이 없었다면 첨단 의료 장비인 CT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CT는 X선을 방출하는 스캐너를 환자 주변으로 360도 회전시키면서 신체 내부에 대한 단면 사진을 얻는다. X선 스캔에 의해 얻어지는 정보는 단지 신체 내부에 대한 밀도분포 함수인데, 이 함수에서 영상을 조합해 내는데 바로 푸리에 변환이 사용된다. 또한 현대 의학에 없어서는 안 될 자기공명영상(MRI)도 마찬가지로 푸리에 변환이 사용된다. 그리고 공학자들은 해안에 몰려오는 파도가 방파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바람이 건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푸리에 수학의 도움을 받는다. 기상학자들은 복잡한 기후의 변화를 연구할 때 푸리에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와 같이 우리 주변에는 푸리에 수학의 도움을 받는 분야가 너무 많다.
아메바는 푸리에 변환의 강력함을 보여준 한 예로 혹자는 푸리에 변환을 가장 아름다운 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푸리에 수학이 이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세상이 파동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푸리에 수학을 더 잘 이해하면 파도뿐만 아니라 모든 파동을 마음대로 제어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글 : 최원석 과학칼럼니스트)
1920년 냉장고는 지금보다 더 조용했다?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 ‘와이브로’가 미국시장으로 진출한다는 소식에 온 나라가 들썩 거렸다. 삼성전자와 100여개가 넘는 중소기업이 공동 개발한 이 기술을 미국 스프린트사가 도입함으로써 토종기술이 세계 차세대 이동통신 시장을 선점할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지난 10년간 CDMA 원천기술을 제공한 퀄컴사에 3조원이 넘는 로열티를 물었으니, 토종기술 와이브로가 더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이 앞서 있다고 장미빛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만은 아니다.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1920년대에 미국에서는 가정용 냉장고 전쟁이 벌어졌다. 가스냉장고와 전기냉장고가 등장, 소비자들의 선택을 기다린 것이다. 당시 객관적인 면에서 보자면 가스냉장고가 훨씬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 가열된 암모니아의 기화열을 이용하는 방식이었던 가스냉장고는 전동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당연히 소음도 발생하지 않았고 구조도 간단해서 고장이 나더라도 정비가 용이했다. 192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가스가 들어오는 집이 전기가 들어오는 집보다 훨씬 많았고 가스료가 전기료보다 더 쌌기에 가스냉장고의 압도적 우위가 예상됐다.
이쯤 되면 승부는 분명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1940년대를 기점으로 전기냉장고가 기세를 날리기 시작했고, 가스냉장고는 소형에서나 겨우 명맥을 이어갈 정도가 됐다. 조용하고, 고장이 적고, 심지어 비용도 저렴한 가스냉장고가 한 수 아래인 전기냉장고에 밀려 슬그머니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일까?
당시 가스냉장고를 제조하는 업체는 세르벨이나 소르코와 같은 중소기업들이었다. 반면 전기냉장고의 보급은 제너럴일렉트릭, 제네럴모터스, 웨스팅하우스와 같은 대기업들이 주도했다. 전기가 한참 보급되는 시절, 발전소에서부터 전등까지 만들며 전기산업을 주도하고 있던 이들 대기업 입장에서는 전기냉장고의 성공이 반드시 필요했다. 전기를 이용하는 제품이 많아야 전기 산업을 더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기업들은 전기냉장고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할 수밖에 없었다. 성능을 개선하고 가격을 내렸다. 또 영화배우들을 활용한 전국 단위의 대규모 프로모션도 진행했다. 이러한 물량공세 결과 1940년대가 되면서 미국 가정의 45%가 전기냉장고를 소유할 정도가 됐다.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가스냉장고는 역사의 유물만으로 남게 됐다.
비단 냉장고 전쟁에서 뿐만 아니다. 생활필수품이 되어 버린 가전제품들 역시 이런 과정들을 거쳐 왔다. 흥미로운 것은 기술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에서 한쪽으로 표준이 정해지면, 싸움에서 이긴 쪽이 시장을 독점해버린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 비디오 표준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였던 소니의 베타맥스와 제이브이시(JVC)의 브이에이치에스(VHS)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베타막스가 화질면에서 월등하게 나았다. 그러나 소니가 기술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에 빠져 있는 사이, 제이브이시(JVC)는 화질은 낮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기기를 공급하고 영화사들을 대거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기술적으로 한수 위인 소니를 시장에서 밀어내 버렸다. 소비자들이 화질이 낮더라도 기기가 싸고 재미있는 영화를 볼 수 있는 VHS방식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소니의 기술은 방송용 고선명 카메라 시장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이 싸움은 현재 연간 240억 달러로 추산되는 차세대 디브이디(DVD) 표준을 놓고 벌이는 싸움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현재 DVD용량을 늘린 새로운 DVD포맷을 정하자는 것인데 소니의 ‘블루레이’(Blu-ray)와 도시바의 ‘에이치디디브이디’(HD-DVD)가 그것이다. 블루레이의 저장용량 25GB는 HD-DVD의 15GB를 압도하지만, HD-DVD는 기존 DVD 설비를 활용할 수 있어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두 방식은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즉 시장의 대세를 장악하는 측이 모든 시장을 거머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보니 DVD 제조업체들도 편을 갈라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이번 힘겨루기의 캐스팅 보드를 쥐고 있는 헐리우드 영화사들이 양편으로 나눠지고 있다. 영화수익의 50~60%를 DVD시장에서 내왔는데, 이 시장의 성장세가 추춤하면서 새로운 돌파구로 차세대 DVD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소니 진영에는 삼성, 애플, 델, 필립스, 샤프, 파이오니아 등과 헐리우드의 거대 영화사인 디즈니와 21세기 폭스, 파라마운트 등이 버티고 있다. 반면 도시바 진영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엔이시(NEC), 산요 같은 첨단 기술기업과 헐리우드의 강자인 유니버설이 합류해 있다.
지난 4월부터 8월까지의 1라운드는 HD-DVD의 판정승이다. HD-DVD가 재생기와 콘텐츠를 먼저 내놓고, 더 뛰어난 화질을 보였기 때문이다. HD-DVD의 용량이 블루레이보다 적은데 어찌된 일일까? 이는 용량보다는 영상압축기술 때문이다. HD-DVD는 ‘VC-1’이라는 최신 기술을 써서 구형 기술인 ‘MPEG2’를 쓴 블루레이보다 좋은 화질을 보였다. 게다가 HD-DVD는 두 개의 기록층을 만드는 ‘듀얼레이어’ 방식을 써서 용량도 30GB로 높였다. 하지만 올해 안으로 블루레이가 상황을 역전할 기세다. HD-DVD처럼 VC-1 영상압축기술과 듀얼레이어 방식을 쓴 타이틀을 출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최종적인 승자는 아직 누구도 알 수 없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과거를 돌아보면 시장을 주도하는 표준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만으로는 힘들다는 것이다. 복잡한 정치·경제·사회적 요인들이 얽히고설키면서 역사의 승자가 결정된다. 그러고 보면 ‘적자생존’을 외쳤던 찰스 다윈의 이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살아남는 것은 크고 강한 종(種)이 아니다. 변화하는 종만이 살아남는다.” (글 : 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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