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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제법 매서워졌다. 요즘에는 이중창이 있지만 예전에 겨울채비를 할 때는 두꺼운 테이프로 창문과 창틀 사이를 막았다. 이때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안 된다. 그 틈을 비집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이다. 


이와 연관해 ‘바늘구멍 황소바람’이라는 속담이 있다. 추운 겨울에는 작은 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바람도 황소처럼 매섭다는 뜻으로, 구멍 난 문풍지를 제대로 막을 형편도 안돼 추운 겨울을 나기 힘들었던 서민의 고충이 숨어있다. 하지만 속담의 속뜻과는 별개로 실제 바늘구멍으로 부는 바람은 속담처럼 활짝 열린 창으로 부는 바람보다 훨씬 거세다. 왜 그럴까? 


1738년 발표된 베르누이의 정리에 따르면 유체는 좁은 통로를 지날 때 속력이 증가한다. 이것은 넓은 통로를 지나던 공기 분자가 좁은 통로로 들어서면서 부딪히는 횟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속력이 증가하는 것이다. 속력은 유체가 지나는 통로의 넓이에 반비례하니, 활짝 열린 창에 부는 바람보다 바늘구멍 바람이 빠른 것이 당연하다. 


오늘날 베르누이의 정리는 분무기에서부터 유압프레스, 그리고 비행기 날개까지 광범위하게 쓰이니,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이 부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한 조상이 있었다면 우리나라가 훨씬 일찍 과학강국이 됐을지도 모른다. 속담은 여러 사람들의 경험이 누적돼 생긴 것이기 때문에 이를 잘 들여다보면 과학적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과학적 원리가 숨은 속담 중에는 특히 기후와 연관된 것이 많은데 농사를 주업으로 하던 우리 조상의 관심이 날씨에 집중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 중 ‘마구간 냄새가 고약하면 비가 온다’는 속담은 저기압일 때 비가 온다는 원리가 담긴 속담이다. 저기압이면 위에서 누르는 공기의 압력이 작아져 냄새 분자가 공기 중에 쉽게 퍼진다. 마구간 냄새가 심하게 날수록 저기압이라는 뜻이니 비올 확률은 자연히 높아진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온다’는 속담에는 습도가 높을 때 비가 온다는 원리가 담겼다. 습도가 높으면 벌레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나뭇잎 등을 찾아 이동하기 때문에 벌레를 잡아먹는 제비는 낮게 날아야 한다. 벌레야 눈에 잘 보이지 않으나 제비는 쉽게 눈에 띄기에 이런 속담이 생긴 것이다. 


기후 다음으로는 건강·의학에 관련된 속담이 많다. 예나 지금이나 건강은 변치 않는 사람들의 관심인 것 같다. 이중 ‘간에 기별도 안 간다’는 속담은 우리 조상들이 간이 소화기관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실제로 간은 쓸개즙을 분비해 지방의 소화를 돕고, 소장에서 흡수한 모든 영양분을 해독·가공해 심장으로 전달한다. 


또 건강·의학 관련 속담 중에 ‘적게 쓰면 약, 많이 쓰면 독’이라는 말은 사실 대부분의 음식과 약에 적용되지만 현대과학에는 이 속담에 꼭 맞는 재미있는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보톡스’다. 보툴리누스균이 만드는 독소는 매우 강력해 신경과 근육을 마비시키지만 과학자들은 이 독소를 수십만배 희석시켜 약품으로 만들었다. 


보톡스는 처음에 안면 근육을 국소적으로 마비시켜 사시(斜視)를 치료하는데 쓰였고, 안면 경련, 목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굳는 증상 등 신경이상으로 인한 경련치료에 쓰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잔주름 제거에 특히 효과가 좋다는 것이 알려져 미용을 목적으로 쓰인다. 그야말로 ‘많이 쓰면 독이지만, 적게 쓰면 약’인 것이다. 


속담 중에는 물리·화학의 원리를 설명해주는 것도 있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은 파동의 굴절에 대한 원리를 담고 있다. 음파는 공기를 통과할 때 온도에 따라 다른 속도를 가진다. 즉 온도가 낮을수록 공기 입자들의 속도가 낮아 음파의 전달속도가 늦고, 반대로 온도가 높을수록 공기 입자들의 속도가 높아 음파의 전달속도는 빨라진다. 


낮에는 태양열을 받아 지표면 근처의 공기는 뜨거워지고 상공의 공기는 상대적으로 차갑다. 따라서 낮에 소리를 지르면 음파가 상공 쪽으로 휘어 새가 듣기 좋게 되는 것이다. 밤에는 반대로 지표면이 온도가 낮고, 상공이 상대적으로 따뜻해 음파가 지면 쪽으로 휘어 쥐가 듣기 좋게 된다. 


또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속담은 물질의 열전달에 대한 원리를 담고 있다. 발이 얼었을 때 따뜻하게 하기 위해 오줌을 누면 잠시 따뜻하겠지만, 이내 오줌이 얼어붙어 오줌 누기 전보다 훨씬 더 춥게 된다. 즉 미봉책일 뿐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 맨발보다 오줌 묻은 발이 더 추울까? 


이것은 기체보다 액체가 열전달을 더 빨리하기 때문이다. 공기가 아무리 차가와도 기체는 발에 냉기를 전달하는 속도가 늦다. 반면 액체는 기체보다 수백배 빠르게 냉기를 전달한다. 이 때문에 잠시 따뜻했던 발은 이내 온기를 잃고 오히려 차가운 냉기가 엄습하게 된다. 젖은 발로 다니면 쉽게 동상에 걸리는 이유다. 


우리는 종종 과학을 절대 진리로 여기며 자연현상을 이미 알고 있는 과학 원리에 끼워 맞추려는 잘못을 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속담 속에 담긴 과학을 잘 들여다보면 과학은 단지 자연 현상을 잘 관찰해서 설명해 놓은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랜 경험의 속담, 풍습, 문화 속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지만 과학보다 더 과학적인 자연의 법칙이 숨어있지 않을까. (글 : 김정훈 과학전문 기자)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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