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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17일 조선 조정에 경상좌수사 박홍의 급보가 날아든다. 대규모 왜군이 같은 달 13일 부산에 상륙했다는 내용이었다. 임진왜란의 시작이었다. 얼마 뒤 조선 최고장수 신립이 이끄는 조선군은 충주 근처 탄금대에서 왜군을 맞는다. 조선군은 분전했지만 참혹한 패배를 당한다. 패인은 왜군의 ‘조총’이었다. 과학화된 신무기로 무장한 왜군은 조선의 구형무기를 압도하면서 선조를 피난길에 오르도록 만든다.
유사 이래 과학은 군사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시도와 꾸준히 만났고, 매번 통치권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을 내놨다. 시대를 압도하는 치명적인 무기의 탄생은 ‘힘의 불균형’을 초래해 그 무기를 가진 자를 절대 강자로 만들었고, 그동안의 전쟁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역할을 했다. 역사상 힘의 불균형을 초래한 대표적인 무기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전차는 고대 이집트의 운명을 갈랐다. 전차로 무장한 채 메소포타미아에서 내려 온 힉소스인들은 기원전 1680년 경 하이집트에 왕조를 세우고 식민통치를 했다.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이집트로서는 굴욕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전차라는 월등한 군사과학기술을 가지지 못했던 이집트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전차가 당대의 치명적 무기가 된 건 차륜 중앙으로 바퀴살이 모이는 허브형 바퀴를 장착했기 때문이다. 허브형 바퀴는 완전한 원형이었다. 따라서 험난한 길을 빠른 속도로 이동할 때에도 바퀴가 찌그러지지 않았다. 기원전 2500년경에 처음 등장한 전차가 원시적인 원반형 바퀴를 채택해 내구성에 문제가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괄목한 만한 기술적 진보였다. 전차가 싸움터에서 격하게 방향을 바꾸고 빠른 속도를 냈던 건 모두 허브형 바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과학과 전쟁의 결합은 중세 유럽에서도 이어진다. 주인공은 백년전쟁에 나선 영국군의 장궁이었다. 길이가 2미터에 이르는 이 대형 활은 1415년 프랑스 아쟁쿠르에서 갑옷으로 중무장한 프랑스 기사들의 가슴에 연거푸 화살을 꽂았고, 프랑스군은 1만 명의 전사자를 내며 패퇴할 수밖에 없었다. 상당수 병사들은 무려 200미터 앞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이는 당시 보통 화살의 유효 사거리인 100여 미터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장궁의 위력은 무엇보다 긴 길이에서 나왔다. 활이 길어지자 자연히 활시위를 당기는 거리가 늘어났다. 이는 운동에너지 증가로 이어졌다. 화살의 관통력이 커졌다는 얘기다. 사람에게 큰 부상을 입히기 위해선 150피트파운드(1파운드의 중량을 1피트 들어올리는 힘)의 힘이 필요한데 장궁은 무려 1400피트파운드의 힘을 갖고 있었다. 활의 재료를 탄력이 좋고 억센 지중해의 주목으로 삼고 동물지방 등 기름을 골고루 발라 신축성을 높인 게 장궁의 위력을 증대시켰다.
장궁은 전쟁 초기 양국의 군사적 능력을 영국으로 크게 기울게 했다. 당시 무기체계의 핵심인 기사를 무력화했기 때문이다. 전쟁 후반에 대포를 실전배치하기 전까지 장궁은 프랑스의 운명을 풍전등화로 몰아넣었다.
기관총은 영국의 기술자 하이럼 맥심이 1870년 발명했다. 기관총은 발사 후 생기는 가스를 보존해 다음 총알의 추진력으로 사용한다. 따라서 발사속도가 소총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일시에 닥치는 대규모 병력은 기관총 앞에서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했다.
과학이 일군 가장 거대한 군사적 성과는 핵무기다. 핵무기는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 상공에서 가공할 성능을 입증한다. B-29 폭격기가 떨어뜨린 한 발의 폭탄에 12만7천 명이 죽고 도시의 60%가 파괴됐다. 이 같은 압도적 위력은 핵무기를 국제적 영향력을 결정짓는 요인으로 만든다. 냉전 초기 미국과 소련이 벌인 핵무기 생산경쟁과 핵을 지렛대로 미국과 양자협상을 하려는 최근 북한의 시도는 이 같은 사실을 방증한다.
핵무기는 폭탄의 개념을 바꿨다. 무엇보다 폭발력의 원천이 달랐다. 우라늄235 등 핵분열 물질의 원자핵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분열반응이 일어난다. 핵분열을 일으킨 원자핵에서는 2개의 중성자가 튀어나와 다른 원자핵에 충돌한다. 이 같은 반응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 막대한 에너지가 분출해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는 것이다. 화약을 이용한 폭탄과는 구조가 완전히 달랐다. 핵이라는 과학적 원리를 무기에 접목시키면서 인류의 역사가 바뀐 것이다.
예술가이며 군사기술자기도 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과학이 전쟁에서 커다란 역할을 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헬리콥터와 탱크, 박격포 등이 미래 전장에서 쓰일 것을 예견했다. 그리고 그 무기를 스케치했다. 15세기의 상상력으로 그린 것치곤 현대 실제무기들과 무서우리만치 흡사하다.
흥미로운 건 그가 무기 개발기록을 공책에 거꾸로 적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얼른 봐서는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유가 의미심장하다. 그는 “뭔가를 기록할 때 누군가 어깨 너머에서 ‘사탄적 지식’을 훔쳐볼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전쟁과 과학의 결합을 걱정한 그의 심정을 헤아려 볼 일이다. (글 : 이정호 과학전문 기자)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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