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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환한 오후. 반달가슴곰이 앞마당에서 세차를 하고 있다. 즐겁게 거품을 닦아내는 반달가슴곰의 환한 얼굴이 점점 클로즈업된다.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성우의 멘트가 흘러나온다. “10억을 받았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는 거라고 합니다.” 


이 광고는 전파를 타고 세계 곳곳으로 퍼졌다. 10억의 꿈(?)을 안은 신규가입요청과 이미 가입한 보험을 확인해주길 바라는 서류가 파도처럼 보험회사로 밀려 들어왔다. 담당자 김 대리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서류더미를 보며 ‘에잇~사표 쓸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이내 현실로 돌아와 확인요청서류부터 하나씩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발신] 안경가마우지(Phalacrocorax perspicillatus) 

제목] 1억이라도 받고 싶습니다. 

내용] 저는 안경가마우지입니다. 멸종된 새 가운데 하나죠. 멸종됐다면서 넌 뭐냐고요? 제가 아마 최후의 안경가마우지일 겁니다. 제가 죽으면 우리 종은 완전히 멸종을 당하는 것이죠.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이 편지를 남깁니다. 제가 죽기 전에 꼭 답장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종이 멸종을 당한 이유는 안경가마우지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인간들 때문이죠. 1741년 저의 고향인 알류산 열도에 비투스 베링이 이끄는 탐험가들이 도착하면서 멸종사건은 시작됐어요. 인간들은 배가 고프다며 해달과 물개를 잡아먹기 시작하더니 스텔러바다소까지 손을 뻗었습니다. 그 뒤가 문제였죠. 우리 안경가마우지는 날개가 작아서 날지 못한다는 점을 알아낸 인간들이 우리 일족을 몰살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인간들은 사악하게도 “한 마리를 죽이면 배고픈 세 명이 먹기에 충분하다”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고기의 맛이 일품”이라고 평까지 했습니다. 제가 알기론 조부모님께서 인간에 의해서 우리 일족이 만약 멸종을 당한다면 내가 그 보험금을 지급받기로 귀사와 계약을 했습니다. 확인하시고 연락주세요. (추신: 여행비둘기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확인해주세요.) 


김 대리는 ‘한참 전에 온 편지네. 아쉽게도 확인이 너무 늦었군’이라고 중얼거리며 휴지통으로 서류를 던져 넣었다. 그 다음은 자이언트 팬더(Ailuropoda melanoleuca)가 보낸 서류였다. 


발신] 자이언트 팬더 

제목] 대나무 숲이 파괴돼 못 살겠습니다. 

내용] 저는 중국에 살고 있는 자이언트 팬더입니다. 현재 팬더는 중국 스촨(四川) 분지 등 지역에 약 1000마리 있고 동물원에 160마리 정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멸종돼 가는 중이죠. 그 이유는 바로 인간들 때문입니다. 저희들은 대나무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저희들이 번성할 시절에는 산마다 대나무가 가득했는데, 빌딩을 짓고 터널을 뚫는다면서 산을 다 밀어버렸죠. 그래서 점점 굶어 죽어 지금은 멸종 위기에 처했답니다. 


김 대리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수신] 자이언트 팬더 

제목] 팬더의 멸종은 까다로운 성욕 때문이라는데…. 

내용] 물론 귀하의 말씀도 맞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자이언트 팬더는 스스로가 자신의 멸종을 더욱 가속화 시키고 있다고 하는군요. 대부분의 자이언트 팬더는 혼자 있기를 좋아해 교미를 할 생각을 당최 하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게다가 새끼 팬더는 태어난 뒤 10일 동안에는 꼭 어미의 젖을 먹어야 하는데, 어미가 새끼를 잘 돌보지 못해 새끼의 생존율이 아주 낮다고 하네요. 이런 점으로 보아 인간 때문에 멸종했다는 계약 건을 들어주기 어렵겠습니다. 

게다가 중국 워룽(臥龍) 자이언트 팬더 연구 센터가 팬더의 교미 시간을 늘려 멸종을 막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 등 인간도 팬더의 멸종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요. 이 센터는 새끼 팬더의 활동량을 일정 수준에 맞추는 체력 강화 프로그램과 특별 사료 처방을 통해 체질을 개선하고, 사춘기로 들어서는 4세부터는 암컷을 옆 우리에 키워 관찰하게 하고, 교미 비디오를 틀어 주는 등 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귀하의 요청을 거절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 서류의 발신자는 해달(Enhydra lutris)이었다. 


발신] 해달 

제목] 고양이의 기생충 때문에…. 

내용] 우리 해달의 멸종 원인 가운데 하나는 털이에요. 물에서 살아 털 밀도가 높아 부드럽다나 어쨌다나. 털은 크게 두 가지 층으로 구분되는데 바깥쪽은 길고 단단하며, 광택 있는 흑갈색 털이예요. 안쪽의 털은 짧고, 부드러우며, 속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조밀하게 난 솜털이고요. 그래서 잠수를 할 경우 바깥쪽 털이 솜털 위를 덮어버리게 되는데, 이로 인해 솜털 아랫부분의 공기는 물속에서도 쉽게 빠져나가지 않아 털이 물에 젖는 시간을 늦춰 준답니다. 또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역할도 해요. 이만하면 인간들이 제 털을 노릴만하겠죠? 

그런데 최근에는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어요. 홍합, 굴, 대합을 먹고 난 동료들이 뇌염을 일으켜 자꾸 죽는 거예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야생동물보건센터의 패트리셔 콘래드 교수가 1998년부터 2001년까지 4년 동안 캘리포니아 해안에 서식하는 해달의 사망 요인을 분석한 결과 톡소플라스마 곤디(Toxoplasma gondii)라는 기생충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톡소플라스마 곤디는 고양이의 배설물에 존재하는 기생충으로 배설물이 지상에 누적되고 비를 통해 바다로 흘러가 우리의 먹이에 쌓이게 돼요. 미국에만 7800만 이라는 엄청난 수의 고양이가 살고 있어요.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인간이니, 우리의 멸종도 결국 인간 때문이 아니겠어요? 보상금을 넉넉하게 주시기 바래요. 그럼 전 이만.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0시.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가운데 겨우 3장 읽었을 뿐인데…. 남아있는 서류의 목록 파일에는 고기와 깃털을 인간에게 뺏긴 알바트로스(Diomedea albatrus)와 지구 온난화로 멸종 위기에 놓인 북극곰(Ursus maritimus), 산업화 때문에 서식지가 파괴되어 멸종 위기에 놓인 인도 야생 바나나 등이 있다. 스크롤을 하다가 눈에 번쩍 띠는 제목이 보였다. ‘저는 페스트균(Pasteurella pestis)인데요. 인간들 때문에 멸종당했어요’ 김 대리는 조용히 긁어서 휴지통에 버렸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내일은 꼭 사표 써야지…” (김맑아 과학전문 기자)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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