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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록 1g의 트랜스지방을 포함하고 있지만 난 ‘트랜스지방 제로’야!” 아니 0도 아니고 거의 없는 것도 아니면서 ‘제로’(zero)라니. 이런 사기꾼이 다 있나 싶어 휴대전화 발신버튼을 누르며 바로 신고에 들어간 김씨. 그러나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뜻밖의 답변. “그게 맞아요!”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인가. 


90kg의 김씨가 70kg이라며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길거리에 붙어있는 엉터리 광고문구인 ‘100% 보장’과는 또 무엇이 다를까. 어떻게 트랜스지방은 몇 g을 가지고도 제로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걸까. 


지방산은 보통 지방으로 불리는데 동물성 기름인 포화지방과 식물성 기름인 불포화지방으로 구분된다. 그동안 포화지방은 심장병 같은 혈관질환에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면이나 과자류 등을 튀길 때 불포화지방이 들어간 식물성 기름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액체로 된 식물성 기름에 음식 재료를 튀기면 너무 딱딱하거나 무르는 등 씹는 맛이 잘 살아나지 않고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기도 어렵다. 또 이때 사용한 기름은 금방 상해 다시 사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식물성 기름에 수소를 인공적으로 집어넣어 만든 고체기름을 이용하면 이런 문제가 단번에 해결된다. 과자나 빵, 도넛의 모양도 제대로 살리고 씹는 느낌도 부드럽게 만들 수 있고 오래 보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체기름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위적인 트랜스지방이 생긴다. 


이 트랜스지방은 불포화지방(식물성 기름)이지만 포화지방(동물성 기름) 못지않게 나쁘다. 즉 트랜스지방을 많이 먹으면 체중이 늘고 혈관을 좁게 하는 나쁜 콜레스테롤(LDL)이 많아져 심장병, 동맥경화증 등의 혈관질환이 생길 수 있으며 간암, 위암, 당뇨병과도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는 1400명의 심장질환자와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시행한 연구에서 트랜스지방 2%를 더 섭취하면 심장질환 발생도 28% 늘어난다고 밝혔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트랜스지방은 최근 핫이슈가 됐다. 미국 뉴욕시는 올해 7월부터 트랜스지방이 많은 기름을 쓰지 못하도록 했으며, 덴마크는 2004년부터 트랜스지방이 2% 이상 들어간 가공식품의 유통과 판매를 금지했다. 우리나라도 올해 12월부터 과자나 빵 등 트랜스지방이 함유된 식품은 함량을 무조건 표시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트랜스지방 하루 섭취량을 총열량의 1%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여성의 하루 권장 열량인 2000cal를 기준으로 볼 때 하루에 트랜스지방을 2.2g 이내로 먹어야 안전하다는 것. 즉 케이크 1조각에 트랜스지방이 3.1g, 도넛 1개에는 0.7g, 비스킷 1봉지에 2.2g이니 하루에 케이크를 반 조각만 먹거나 도넛을 2개만 먹거나 비스킷 1봉지만 먹는 게 좋다. 


그렇다면 과자나 빵, 면 종류를 먹지 말아야할까. 이런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각 식품업체는 몇 년 전부터 트랜스지방을 대체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한 식품재료업체는 트랜스지방을 낮춘 쇼트닝과 마가린을 생산해 제과업체에 공급하고 있고, 다른 기업은 효소로 지방의 구조를 바꿔 트랜스지방을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미흡한 수준. 현재 기름관련업체는 고체상태이면서도 트랜스지방이 없는 기름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과자 등을 만드는 식품 업체도 쇼트닝이나 마가린 대신 팜유와 같이 식물성 액체기름을 사용해 트랜스지방 함량을 낮추고 있다. 또 이름만 같고 해롭지 않은 동물성 트랜스지방이 들어있는 우유나 버터, 치즈 등을 이용해 가공 방법에 변화를 주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트랜스지방 포함정도를 소비자가 알기 쉽게 한다는 취지에서 식품 섭취 1회 분량 기준으로 트랜스지방이 0.5g 미만 들어있으면 ‘트랜스지방 0(제로)’를, 0.2g 미만이면 ‘무(無) 트랜스지방’으로 강조해서 표시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그런데 소비자단체는 식품마다 1회 섭취량이라는 기준이 모호하고, 또 트랜스지방이 조금 들어있는데도 ‘제로’나 ‘무’라고 강조 표시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크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최근 여러 제과 업체에서 자신들의 식품이 ‘트랜스지방 제로’라고 광고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는 1회 섭취량이 가지는 모호함을 이용해 제품의 전체 열량에 관계없이 0.5g 이하면 무조건 ‘트랜스지방 제로’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즉 전체 열량 100cal 제품에 트랜스지방 0.5g이 들었어도 제로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하루 열량 2000cal로 환산하면 트랜스지방을 무려 10g이나 섭취하게 되는 것이다. 


제로나 무라는 표현은 식품에서 유독 많이 사용한다. 영양표시 기준에 따르면 식품 100g(또는 100ml)당 0.5g 미만이 지방이 들어가면 무지방으로 표현할 수 있다. 식품 100g(또는 100ml)당 0.5g 미만의 설탕이 들어가면 역시 무설탕으로 표현할 수 있다. 또한 소금(염)이 식품 100g 당 5mg 미만이면 무염으로 표시가 가능하다. 즉 무설탕 껌도 설탕이 들어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다른 분야에서도 100% 정확한 값이 아닌 근사치를 사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진공. 하지만 입자가 하나도 없는 공간인 진공은 자연에서 구현하기가 거의 불가능해 재정의는 불가피하다. 진공은 대기압보다 압력이 낮은 상태 또는 1cm3당 분자 수가 2.5×1019로 정의한다. 날마다 만나는 식품이 ‘0’도 아니면서 ‘무’와 ‘제로’로 강조표시가 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글 : 박응서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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