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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술사가 줄에 매달린 시계를 가져와 눈앞에서 천천히 흔들어 댄다. “당신은 이제 편안해집니다.” 대상자의 눈이 스르륵 감긴다. TV에서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최면 시술 장면이다. 인터넷에는 “당신은 최면에 잘 걸리는 타입인가?”라는 문구로 ‘최면지수’를 테스트하는 사이트도 있다. 최면의 효과나 해석에는 신뢰할 수 없는 구석이 많지만, 어쨌든 사람이 최면에 걸릴 수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흔들리는 시계’에 대한 인식이 강하게 박혀서인지 최면은 고등 사고를 할 줄 아는 인간만 걸린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동물도 최면에 걸린다. 최면에 걸린 동물은 꼼짝달싹 못하거나 깊은 잠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 범위도 다양해서 포유동물은 물론이고 문어, 갑각류, 전갈, 곤충, 불가사리 등 다양한 동물에서 일어난다. 재미있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동물최면 중에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개구리다. KBS 교양방송 ‘스펀지’에 별 5개의 지식으로 소개돼 유명세를 탔다. 개구리를 뒤집어놓고 배를 살살 문지르면 개구리는 잠에 빠진다. 골쉬라는 의사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개구리 배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거나 개구리 위에서 ‘딱~ 딱~’하고 손가락을 반복적으로 튕겨 소리를 내도 잠들었다. 


개구리의 배를 문지르면 잠든다는 사실은 개구리를 잡으며 놀던 과거에는 누구나 아는 상식이었다고 한다. 배를 문지르면 왜 잠이 드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근육을 이완하는 신경이 배에 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잠든 개구리는 손가락으로 톡톡 쳐 자극을 주면 깨어난다. 


파충류 이구아나는 배가 아니라 이마를 문지르면 잠이 든다. 정확히는 이마와 눈 사이에 있는 ‘송과선’이란 부위를 문지르면 잠이 든다. 송과선은 이구아나가 밤과 낮을 구분할 때 쓰는 기관이다. 송과선을 문지르면 밤낮에 혼란이 찾아와서 이구아나가 잠든다고 알려져 있다. 재밌는 사실은 한번 잠든 이구아나는 시끄러운 괘종시계가 울려도 깨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손가락으로 건드려 자극을 주면 깨어난다. 


새도 최면에 걸린다. 대표적인 예는 닭이다. 다니엘 슈벤터라는 수학자는 휘어진 조그만 나무토막을 닭의 부리에 묶어 최면에 걸리게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닭은 부리에 묶인 나무토막에 시선을 집중하게 되는데 몇 분이 지나면 최면 상태에 빠져 움직이지 않는다. 땅에 분필로 선을 긋고 그 지점에 닭의 부리를 땅에 대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땅에 그은 선에 닭이 집중하기 때문이다. 


닭은 다른 방법으로도 최면에 걸린다. 바로 닭의 머리를 날갯죽지에 파묻고 천천히 흔들어주는 것이다. 이 방법은 아타나시우스 키르테라는 수도승이 알아냈다. 프랑스의 농부들은 지금도 시장에서 살아있는 닭을 살 때 이 방법을 사용한다. 모든 새에 공통적으로 적용되지는 않지만 타조도 같은 방법으로 최면에 걸린다는 보고가 있다. 


최면현상은 포유류에서도 나타난다. 얼마 전 미국의 한 토끼 애호가가 토끼 최면법을 알아냈다고 인터넷에 공개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토끼 배가 위로 향하도록 안은 뒤 흔들면서 귀를 쓰다듬으면 토끼가 잠든다는 것이다. 그는 토끼에게 약을 먹이거나 발톱을 손질할 때 이 방법을 쓴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이 방법은 오래전부터 토끼 애호가 사이에서 공인받은 방법이었다. 미국 수의사 매튜 존스톤은 자기도 토끼 응급 치료를 할 때 자주 사용한다면서 “이 방법을 쓸 때는 토끼를 길이 방향으로 흔들어야지 직각 방향으로 흔들어서는 효과가 없다”고 했다. 


최면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갑각류도 최면에 걸린다. 날카로운 집게로 위협하는 게를 다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때 최면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게의 등껍질을 머리부터 꼬리 방향으로 천천히 쓰다듬는 것이다. 게의 움직임이 느려지다가 결국 멈춘다. 최면에 걸린 것이다. 다시 깨어나는 방법도 간단하다. 이번에는 꼬리에서 머리 방향으로 문지르면 된다. 


이런 동물최면은 왜 일어날까? 정확한 메커니즘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몇 가지 추측은 할 수 있다. 동물최면은 공통적으로 몸의 일부를 일정시간 동안 압박하거나 문지르거나 흔들거나 해서 일어난다. 최면에 걸린 동물은 공통적으로 수의근이 정지돼 압박을 풀어도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뇌를 제거한 동물에서도 최면이 일어났다는 보고에 따르면 대뇌가 관여하는 사람의 최면과는 달리 중추신경의 흥분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드레날린과 같은 신경전달 물질이 관여하는 경우도 있다. 새장 속의 새를 갑자기 움켜쥐거나 소리를 지르면 그 충격으로 최면에 걸린다. 예전에 참새를 잡을 때 산탄총을 쏘면 절반은 총알에 맞아서 떨어지고 절반은 소리에 놀라서 떨어졌다. 즉 충격에 의해 다량의 아드레날린이 분비돼 흥분의 정도가 지나치게 되면 몸이 굳는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극도의 긴장 상황에서 몸이 굳는 현상과도 일맥상통한다. 


동물최면은 잘 알고 이용하면 동물을 길들일 때 유용할 수 있다. 서커스단에서 난폭한 동물을 처음 훈련시킬 때 종종 최면을 이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초기의 난폭함이 진정된 뒤에는 최면을 사용하지 않고 조련사와 동물 사이의 신뢰관계로 훈련한다. 동물에게나 인간에게나 가장 강력한 최면법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과 신뢰’가 아닐까?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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