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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원인 미상의 폐질환으로 쓰러져 간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그 사이 폐질환을 일으킨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사실은 밝혀졌지만 사실에 대한 충격이 너무 컸던 때문이었을까. 화학물질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생활용품 전반으로까지 확산되고 이른바 ‘화학물질 포비아(phobia)’로 불리는 불안 증상이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막연한 공포라고 하기엔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터진 이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동안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수많은 화학 생활용품들의 성분이 재조명되면서 실제로 이들의 안전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 상반기에 판매금지 될 탈취제 및 방향제 


사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많은 화학 생활용품(출처: 경기도청)

사실 소비자들은 화학 생활용품들의 안전성 문제가 주의를 환기하는 수준에서 끝나기를 원했을 것이다.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광범위하고 오래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이제 심각한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급기야는 정부가 대표적 화학 생활용품이라 할 수 있는 방향제와 탈취제의 판매 금지가 상반기 중에 취해질 것으로 알려져 소비자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탈취제와 방향제의 경우 공기 중에 스프레이처럼 뿌리는 분사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대부분 살균 및 항균 성분이 포함돼 있다. 

환경부는 최근 방향제와 탈취제 등에 대해 상반기 중 판매금지 및 의무표시 제도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보도하면서, 이들 제품의 주요 성분인 ‘메틸이소티아졸린(MIT)’ 및 ‘클로록실레놀(Chloroxylenol)’ 등에 대해 유해성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메틸이소티아졸린’은 사람이 흡입하게 되면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물질이다. 과거 환경부가 유독물질로 지정했었지만, 현재도 탈취제와 방향제 원료로 쓰이고 있다. ‘클로록실레놀’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이 물질을 흡입하면 폐렴과 심폐정지, 그리고 급성 호흡곤란증후군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이 외에 글로벌 생활용품업체인 P사의 탈취제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제4급 암모늄 클로라이드(Quaternary Ammonium Chloride)’도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상태다. 강한 살균력과 소독력을 가진 이 물질은 가습기 살균제와 화학적으로 유사한 벤조이소치아졸리논(BIT) 계열 물질이어서 의심을 사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가습기 살균제에 쓰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등 26종을 사용금지 물질로 지정하고 있지만, 앞에서 언급한 물질들은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사용금지 물질로 지정돼 있지 않은 상태다. 반면에 유럽연합(EU)의 경우는 일찌감치 이들 물질을 사용금지 품목으로 정하고, 사용여부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어 우리나라와는 대조를 보이고 있다. EU는 사용금지 물질만 해도 모두 500여 종에 달할 정도로 유해 화학물질의 사용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한편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이어 탈취제 및 방향제의 판매 금지 소식도 들리고 있어 소비자들의 관심이 온통 이들 제품에 쏠리고 있지만, 사실 이들 말고도 집안 곳곳에는 문제가 될 만한 성분을 가진 제품들이 넘쳐나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으로는 1,4 다이옥신(Dioxine)을 들 수 있다. 이 물질은 물에 쉽게 녹고 잘 분해되지 않는 성질 때문에 샴푸나 클렌징 등에 사용되고 있는데, 국제암연구소(IARC)에서는 1,4 다이옥신을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항균비누와 치약, 화장품에 사용되는 트리클로산(Triclosan)은 갑상선 호르몬을 방해하는 내분비계교란물질로 알려져 있고, 합성세제와 섬유유연제에 사용되는 알킬페놀(Alkylphenol) 역시 환경호르몬으로 생식과 발달을 방해하는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화장품이나 의약품 등의 방부제로 사용되는 파라벤(Paraben)도 있다. 이 물질은 샴푸와 린스 그리고 로션과 치약 등 사용범위가 대단히 넓은 데, 피부 알레르기를 유발하고 내분비계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 나라별 화학물질 안전 기준 

유해 화학물질이 이 정도로 생활용품 전반에 걸쳐 만연하게 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부도덕한 기업 때문일까? 아니면 관리 감독의 허술함 때문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국내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 기준을 제시하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이 법은 신규 화학물질에 대해서만 물리·화학적 특성에 관한 자료와 인체 및 생물체에 대한 독성자료를 제시하도록 규정돼 있다. 다시 말해 기존 화학 물질을 제조하거나 수입하는 경우에는 유해성 심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표. 국가별 화학물질 등록대상 및 의무주체 비교표(출처: 감사원)

성분 중 문제가 됐던 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CMIT), 메틸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MIT)은 모두 유해화학물질관리법상 신규 화학물질이 아닌 기존 화학물질에 해당됐기 때문에 오늘날의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유럽은 지난 2007년부터 사람의 건강 및 환경에 대한 화학물질의 위해성을 예방하는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의 유해 화학물질 기준을 한단어로 요약한다면 ‘No Data, No Market’이다. 즉 안전성 검증이 없는 화학물질은 시장출시를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미국의 경우는 좀 다르다. 유럽과 더불어 가장 앞선 유해 화학물질 관리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국이지만, 유럽의 REACH와는 조금 성격이 다른 유해화학물질통제법(TSCA)이라 불리는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TSCA는 우리나라처럼 신규물질에 대해서만 화학물질의 위해성 여부를 가리고 있다. 다만 우리와 다른 점은 소비자용 화학제품들만큼은 기존물질들까지 포함해 안전 기준을 철저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간단하게나마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국가별 기준을 알아보았지만 알면 알수록 우리의 허술한 관리 기준에는 답답함이 밀려오고 선진국들의 철저한 기준에는 부러움이 앞선다. REACH 수준의 제도만 갖춰져 있었더라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고귀한 목숨을 잃는 이 같은 후진국형 사태가 벌어졌을까? 


글 : 김준래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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