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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막 - 1740년 프랑스 베르사이유궁 

싱긋 웃는 장 안토니 놀레 신부 앞에서 왕실 근위대장의 부관 프랑소와즈는 굳었다. 이 악명 높은 신부가 찾아오기 전에 그만뒀어야 했는데! 차일피일 퇴임을 미루고 있던 자신을 원망하며 그는 동료에게 들은 놀레 신부의 일화를 떠올렸다. 


몇 년 전 신부는 소년 한 명을 천정에 명주실로 매달아 전기 실험을 했다. 그가 털가죽으로 문지른 유리막대를 소년의 발바닥에 가져다댔더니 뿌려둔 금속 조각이 튀어 올라 소년의 손에 붙었다. 대전된 유리막대 때문에 소년의 몸에 전기가 통했기 때문이었다. 금속이 닿을 때마다 소년은 아프다고 호소했지만 신부의 호기심을 이기지는 못 했다. 그랬던 신부가 전기를 모을 수 있다는 ‘라이든병’ 이야기를 듣고 다시 일을 친 것이다. 


신부는 “당신들의 충성심으로 프랑스의 과학력에 힘을 보태달라”고 근위대장을 충동질해 근위병 180명을 불러 모았다. 덕분에 프랑소와즈는 서로의 손을 잡고 왕 앞에 둥글게 모여 선 근위대를 지휘하는 처지가 됐다. 줄의 양 끝에 있는 두 명은 라이든병을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 제비뽑기에서 선택된 ‘불운아’들이었다. 


“하나! 둘! 셋!” 

구호와 함께 선택된 두 명은 눈을 질끈 감고 동시에 라이든병을 집었다. 그들은 비명소리도 내지 못 했다. 마치 집단 줄넘기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한꺼번에 펄쩍 뛰어오르는 180명의 근위병을 보며 왕은 웃었다. 그러나 그들의 하얗게 질린 입술을 본 몇몇은 차마 웃지 못했다. 열을 지휘하기 위해 뒤로 빠졌던 프랑소와즈는 더더욱. 


그 뒤 놀레 신부의 악명은 더더욱 멀리 퍼져나갔다. 이 중 일부는 퇴임한 프랑소와즈와 근위대 병사들이 낸 것일지도 모른다. 


놀레 신부가 한 명주실 실험은 영국의 스티븐 그레이(1670~1736)가 고안한 것이다. 그레이는 자신의 손을 매달린 이의 머리에 갖다대는 방법으로 전기를 확인했지만 놀레 신부는 금속 조각을 이용했다. 라이든병은 1745년 과학자 무셴브뢰크가 발명한 것으로 유리병 바깥쪽에 붙인 금속판과 안쪽에 있는 금속박을 전선으로 연결해 병 안에 전기를 모으는 장치다. 이 때 모이는 전기는 정전기이기 때문에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다. 


# 2막 - 1400년대 독일 작센의 수도원 

스승님은 이상한 분이시다. 신을 믿으신다며 황금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그러하거니와 보이는 족족 기록하고 궁금한 것은 다 실험해 보시려는 모습이 또한 괴이하다. 우리 견습 수도사 사이에 ‘괴이한 발렌티누스님’라는 별명이 돌고 있는 것도 모르시는 것 같다. 


어느 날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보아라. 저 살찐 돼지들을. 내가 버린 쓰레기를 먹는 것이 저들의 섭리일진대 어찌 저리 살이 오른단 말이냐. 내 동료들은 저렇게 빼빼 말라 죽어 가는데 말이다.” 

“죽어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스승님 생각이 그러하시다면….” 

“그래. 쓰레기를 한 번 먹여보자! 돼지를 살찌운다면 인간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아, 스승님 별명이 하나 더 있었다. ‘귀먹은 발렌티누스님’. 스승님은 정말로 금을 만드시기 위해 온갖 금속을 모아놓은 쓰레기를 모으라고 명하셨다. 그리고 불쌍한 수도사님들은 쓰레기의 희생양이 됐다. 듣자 하니 스승님이 “몸에 좋다”며 강제로 먹이셨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쓰레기를 드시던 분들이 하나씩 쓰러지시기 시작했다. 그레고리우스님은 뼈와 가죽만 남을 정도로 말라버렸고 사이암님은 급격히 쇠약해지시더니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다. 사이암님의 장례식에서 스승님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장례식 1주일 뒤, 스승님은 쓰레기를 원래 버리던 장소로 돌려놓으라고 명하신 뒤 조용히 덧붙이셨다. 


“내 쓰레기는 돼지를 살찌우지만 수도사에겐 독이로구나. 저 쓰레기를 ‘안티몬’(antimony)이라 부르자꾸나.” 

안티몬(수도사를 괴롭힌다)이라니 정말 기가 막힌 이름이다. 수도사를 괴롭힌 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스승님인 것 같지만 말이다. 이런 말을 했다가 안티몬을 먹어야 할지도 모르니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어야겠다. 


안티몬은 원소기호 51번으로 유독성 물질이다. 그러나 소량 섭취하면 약이 되기도 한다. 쓰레기 사건이 일어난 뒤에도 발렌티누스는 꾸준히 안티몬을 연구했다. 그의 연구 결과는 1470년경 발간된 ‘안티몬의 개선마차’에 수록됐다. 


# 3막 - 1775년 영국 런던 왕립학회 

“아주 뜨거운 공기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될지 실험해보지 않겠습니까?” 

지난해 말, 연례 회의에서 토마스 경이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만 해도 우린 모두 웃어넘겼다. 그 당시 우리는 41℃만 넘으면 사람이 죽는다고 알고 있었다. 이보다 높은 온도에서 어떻게 될까 궁금하긴 했지만 몸을 던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자랑스러운 왕립학회에서 정말로 실험을 하게 될 줄이야! 부끄럽지만 그냥 도망치고 싶다. 우리가 들어갈 좁은 방의 난로를 떼며 투덜대는 심부름꾼들이 부러울 정도였다. 


수은주가 점점 올라갔다. 80, 90, 100. 맙소사, 100℃라면 물이 끓는 온도잖아! 회원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한 사람씩 방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돼 문을 열자 뜨거운 공기가 훅 불어왔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김 속에서 얼굴이 달아오른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있거나 서성거리고 있었다. 토마스 경은 온도계를 물고 있었다. 나중에 듣자하니 “체온이 정상이라 더 놀랐다”고 한다. 


내 시계는 엄청나게 뜨거웠지만 내 피부는 굳어버린 심장처럼 차가웠다. 숨을 쉴 때마다 뜨거운 공기가 콧구멍으로 들어와 견디기 힘들었다. 숨을 참다 죽을 것 같아 뱉었더니 숨결이 닿은 수은주가 내려갔다! 평소에는 환호하며 기록했겠지만 이 지옥에서 무슨 과학적 호기심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결국 5분 뒤 도망 나왔다. 찬 바깥 공기가 너무나 달콤했다. 


더 높은 온도에서 다시 실험하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두 손 모아 빈 덕분에 두 번째 실험에서 빠질 수 있었다. 소문에 따르면 그 실험 참여자들은 고기가 구워질 정도로 뜨거운 방에서 땀을 잔뜩 흘린 뒤 ‘시원하다’는 이상한 말을 하며 나왔다고. 하지만 평소 체력이 약했던 햄 경만은 시뻘건 얼굴로 앓아누웠다고 한다. 정말 빠지길 잘했다. 


왕립학회의 실험은 옷을 입고 사우나에 들어간 것과 같다. 이들의 실험은 자칫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체온이 올라가면 몸에서 배출된 땀이 증발하며 체온을 내려준다. 그런데 수증기가 꽉 찬 밀폐된 방에서는 땀이 더 이상 증발하지 않기 때문에 체온이 너무 올라가 사망할 수도 있다. 또 연구 결과에 따르면 30분 이상 많은 땀을 흘리면 몸에 무리가 온다고 한다.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에서 자신이나 주변 사람을 괴롭힌 엽기적인 과학자들. 그래도 그들의 희생 덕분에 과학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풍요로운 현재를 만들어준 그들의 도전정신에는 찬사를, 이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에겐 애도를 보내는 바이다.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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