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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의심이 없는 자는 깨달음도 없다!” 

18세기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 홍대용의 말이다. 그는 의심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적인 사고의 선구자였다. 실용적인 학문으로 그릇된 세상을 바로잡으려 했다는 점에서는 다른 실학자와 같지만, 당시 이질적이었던 과학 사상을 배우고 전파하기 위해 애썼다는 점에서 다른 실학자와 구별된다. 


당시 많은 실학자가 서양 문물에 관심을 가졌지만 홍대용처럼 과학에 관심을 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뛰어난 천문 관측으로 지구가 둥글며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우주 무한설’을 설파했으며, 심지어 외계인의 존재 가능성을 예측하기도 했다. 당시 조선의 분위기를 생각할 때 놀라운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홍대용은 1731년 충청남도 수신면에서 태어났다. 양반 집안 출신이었지만 홍대용은 과거시험을 통해 관료로 들어가는 일반적인 전통에 따르기보다 순수하게 학문의 길을 밟기로 결심했다. 


그가 먼저 관심을 가진 분야는 수학이다. 이는 서양 과학이 우수한 이유가 수학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홍대용은 훗날 남긴 ‘주해수용’(籌解需用)을 통해 우리나라 수학이 ‘구장산술’(九章算術)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을 비판하며 “새로운 창조와 경험으로 풍부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대용은 구장산술 외에도 수학계몽, 수학통종, 수법전서 등 많은 책을 정리하고 연구해 당시 수학을 집대성했다. 주해수용에서 그는 당시 수학의 거의 모든 부분을 망라해 잘못을 지적하고 분석했으며, 비율법, 약분법, 면적과 체적 등 근대적인 표현을 썼다. 홍대용의 수학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나이 29세에 호남의 학자 나경적을 만난 뒤로 홍대용의 관심은 천문학으로 옮겨간다. 나경적과 함께 혼천의를 제작하고 자명종, 혼상의도 만들었다. 홍대용이 만든 혼천의는 물을 사용해 움직이던 이전 혼천의와는 달리 기계시계를 톱니바퀴로 연결해 움직이게 한 것이다. 혼상의는 별의 위치와 별자리, 황도와 적도 등 천구의 표준 대원을 표면에 나타낸 일종의 천구의다. 


홍대용은 더 나아가 사비를 털어 사설 관측소인 ‘농수각’(籠水閣)을 짓고 천체 관측 기구인 측관의, 구고의 등을 제작해 설치했다. 홍대용이 천체 관측 기구 제작에 열심을 낸 이유는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관찰과 실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못에 설치된 농수각에서 홍대용은 천체 관측에 열정을 쏟아 부었다. 


1765년 홍대용의 나이 35세에 떠난 청나라 북경 여행은 그의 사상에 획기적인 변화를 주게 된다. 홍대용은 조선의 외교사절단이었던 숙부 홍억의 개인비서 자격으로 북경에 약 3개월 간 머물렀다. 이곳에서 그는 천주교 성당인 ‘남천주당’에 자주 방문하면서 서양 선교사를 통해 서양의 진보한 과학을 접할 수 있었다. 


북경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저술한 ‘의산문답’(醫山問答)에는 홍대용이 품었던 과학 사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의산문답은 ‘허자’(虛子)와 ‘실옹’(實翁)이라는 가상의 인물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과학에 대해 토론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여기서 허자는 유교 사상을 대변하며 실옹은 근대 서양 과학을 대변한다. 홍대용은 실옹의 입을 빌려 맹목적인 유교를 비판하고 합리적인 과학 사상을 전달하려 했다. 


허자=예부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고 했소. 선생은 어찌해 땅이 둥글다 하시오? 

실옹=일식이 왜 일어나는지 아시오? 일식이 일어나면 태양에 둥근 고리가 생기오. 그 고리의 실체가 뭐겠소? 

허자=달이오. 

실옹=일식은 달이 해를 가리기 때문에 생기는 거요. 즉 달이 둥글다는 얘기요. 그럼 월식은 어떻소? 월식이 일어날 때 생기는 고리는 어떤 모양이오? 

허자=둥글었소. 

실옹=월식은 지구가 태양을 가리기 때문에 생기는 거요. 달에 비친 땅덩어리가 둥글다는 건 지구의 모양도 둥글다는 뜻이오. 월식을 보고도 땅덩어리가 둥글다는 걸 모르는 건, 자기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고도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것과 같소. 


의산문답의 구성은 이 같은 식이다. 이어지는 이야기에는 지구가 회전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홍대용은 “지구가 번개나 포탄만큼이나 빠르다”고 했다. 빛과 포탄의 속도는 매우 큰 차이가 나니 홍대용의 말이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지구가 매우 빠르게 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의산문답에는 떨어지는 현상, 즉 중력에 대한 고찰도 있다. 홍대용은 그 이유가 “기운이 땅으로 모이고 있기 때문”으로 봤으며 “땅에서 멀어질수록 이 힘은 자연스럽게 없어진다”고 했다. 그는 또한 지구가 우주의 한 가운데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주는 한없이 넓고 지구는 그 중 하나의 천체일 뿐이라고 봤다. 더 나아가 이렇게 넓은 우주 속에 다른 생명체, 즉 외계인도 반드시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다. 


혹자는 홍대용의 이와 같은 고찰이 이미 서양 선교사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받아 적은 이론이기에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사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1543년 나왔기 때문에 홍대용의 발견은 그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 그러나 홍대용이 서양 선교사와 과학지식까지 상세히 대화할 의사소통 수단이 없었다는 점, 이미 조선에 성리학을 바탕으로 지구가 돈다는 김석문의 주장이 있었다는 점 등을 볼 때 서양 선교사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적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결국 홍대용의 생각은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기는 했으나 우주의 무한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자유롭게 독창적인 생각을 펼쳤다고 봐야 한다. 


1783년 나이 53세에 홍대용은 중풍으로 상반신이 마비돼 죽음에 이른다. 친구였던 실학자 박지원은 추모하는 글에서 “식견이 원대하고 사려 깊고 독창적인 기지가 있었으며 사물을 종합해 체계적으로 분석한 사람”이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 2005년 국제천문연맹 산하 소행성센터는 화성과 목성 사이에 돌고 있는 새로 발견된 소행성의 이름을 ‘홍대용’으로 명명했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상을 펼친 그의 이름이 별과 함께 영원히 기억되길 기대한다.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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