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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소장님! 나이스샷~!” 


경쾌한 소리와 함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작고 하얀 골프공이 날아갔다. 하지만 멋지게 날아가던 골프공은 갑자기 오른쪽으로 휘며 호수에 빠졌다. 슬라이스(slice, 골프공이 오른쪽으로 휘며 날아가는 현상)가 났다. 라운딩을 즐기던 사람들은 안타까움에 탄식을 터뜨렸지만 캐번디시연구소의 3대 소장인 조셉 존 톰슨은 호기심이 생겼다. 혹시 골프공에 작용한 보이지 않는 힘이 마그누스가 주장한 그 힘일까? 


톰슨은 1856년 12월 18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맨체스터 대학의 오웬스 칼리지에서 학부과정을 마친 톰슨은 1875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도전하지만 실패하고 이듬해 비로소 입학에 성공한다. 


그 뒤 톰슨은 맥스웰과 레일리의 뒤를 이어 캐번디시연구소의 3대 소장으로 취임했다. 이곳에서 톰슨은 기체방전 연구를 하다가 1897년 영국 왕립연구소의 금요저녁회의에서 음극선은 원자보다 작은 (-)극을 띈 미립자라는 사실과 이 미립자의 전하량과 질량비를 발표했다. 


톰슨은 음극선이 원자보다 작은 (-)극을 띈 미립자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톰슨은 1883년 ‘음극선은 전자기장에서 휘지 않는다’는 헤르츠의 실험 결과를 뒤집어야 했다. 톰슨은 음극선의 경로에 있는 기체로 인해 실험에 오차가 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음극선관을 거의 완벽한 진공으로 만들었다. 음극선은 진공 상태가 돼서야 비로소 전자기장을 지나며 휘었다. (-)극을 띈 이 미립자는 훗날 전자로 불리게 되는데 전자의 발견으로 인해 톰슨은 190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는다. 


톰슨의 연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03년에는 최초로 원자핵 모형을 제안하고, 1912년에는 질량분석기를 만들어 아스톤(1922년 노벨 화학상 수상)과 함께 네온의 동위체를 발견했다. 


그는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캐번디시연구소에 실험과학의 전통을 심어 우수한 인재들이 스스로 찾아오게 만들었다. 톰슨이 재직한 33년 동안 캐번디시 연구소에서는 러더포드, 아스톤, 콤프톤을 비롯 7명의 노벨상수상자가 연구를 했으며 27명의 왕립학회 회원을 배출했다. 


톰슨은 연구하랴, 캐번디시연구소 운영하랴, 후학 양성하랴 바빴지만 골프를 즐기는 여유만은 잊지 않았다. 그리고 골프를 즐기며 갖게 된 호기심을 직접 해결해 ‘골프공 동력학’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골프공 동력학’은 골프공에 슬라이스나 훅(hook, 골프공이 왼쪽으로 휘며 날아가는 현상)이 나서 좌우로 휘는 이유인 마그누스 효과에 대한 논문이다. 톰슨이 골프공을 이용해 마그누스 효과를 연구한 1910년은 마그누스 효과가 새로운 이론으로 떠오르는 시기였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양력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었다. 


톰슨은 골프공 좌우의 압력차에 의해 공이 휘었다고 가정하고 골프공이 회전할 때 좌우에 생기는 압력차를 측정했다. 골프공에 있는 딤플(옴폭 패인 작은 홈)도 마그누스 효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 딤플이 있는 골프공과 없는 골프공으로 바꿔가며 실험했다. 실제로 딤플이 있는 골프공이 없는 골프공보다 양력을 많이 받아 날아가는 거리가 멀다. 지금은 모든 골프공에 300~500개의 딤플이 있다. 


톰슨은 마그누스 효과에 대한 실험에서 그치지 않았다. 음극선 방전연구로 전자를 발견해 노벨상을 받은 그의 특기를 되살려 음극선이 전자기장을 통과할 때 골프공이 훅이나 슬라이스가 나서 움직이는 것처럼 움직이도록 재현했다. 적당한 세기의 전자기장을 걸어 음극선이 이를 통과할 때 바닥으로 떨어지게 만들고 이를 중력으로 인한 자유낙하로 가정했다. 그리고 자기장의 세기를 바꿔 골프공에 걸리는 양력을, 자기장의 방향을 바꿔 골프공에 걸리는 훅과 슬라이스를 재현했다. 


톰슨은 이 음극선관의 이름을 전자 골프장(electric golf links)이라고 지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실제 골프장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은 세계 최초의 가상 골프장이었다. 


톰슨은 노벨상을 수상한지 4년이 지난 1910년 3월 영국 왕립연구소에서 ‘골프공 동력학’ 연구를 발표했고, 논문은 1910년 12월 22일자 ‘네이처’에 게재됐다. 골프를 사랑한 노벨상 수상자의 진지한 취미 정도로 보기에는 대단한 결과였다. (글 : 전동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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