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혈액 부족 문자가 또 왔네. 요즘 혈액이 정말 부족한가봐. 이번 주에 헌혈하러 가야겠다.” 

“정말? 헌혈하면 빨리 늙는다는 얘기 못 들어봤어? 헌혈하면 우리 몸이 무리해서 피를 만들어 내느라 골다공증에 걸리고 키도 안 자란대.” 

“이 친구야. 몸 속 혈액량의 15%는 여유분인데, 1회 헌혈량인 400~500ml 정도는 거기 미치지 못하는 양이야. 우리 몸은 매일 50ml 정도의 새로운 피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또 헌혈로 몸에서 빠져나가는 성분은 주로 철분인데, 칼슘 부족으로 골다공증에 걸린다는 건 말도 안 되지.” 

“음, 그런가?” 


헌혈하면 뼈가 약해진다는 둥, 헌혈 주사 바늘에 병이 옮는다는 둥의 ‘헌혈괴담’에게 귀가 솔깃해진 적이 있는지. 마침 6월 14일은 국제적십자사연맹이 정한 세계 헌혈인의 날. 헌혈에 대한 오해를 풀고 제대로 알아보자. 


Q. 수혈은 한때 법으로 금지됐었다? 


그렇다. 고대부터 피를 이용한 치료방법이 성행했다. 피를 마시거나 뽑거나 동물의 피를 사람에게 수혈하는 등 여러 방법이 쓰였다. 1628년 윌리엄 하비에 의해 혈액이 심장에서 출발해 동맥, 모세혈관, 정맥을 통해 온몸을 순환한다는 게 밝혀졌고, 이후 피의 순환을 확인하는 여러 실험이 이뤄졌다. 1665년 영국의 리처드 로워가 대롱을 이용해 개의 동맥과 다른 개의 정맥을 연결해 동물 대 동물 수혈 실험에 성공했다. 이후 수년간 수혈 시도가 있었는데 당시까지 수혈은 오늘날과 같은 의미는 아니었다. 피가 그 사람이나 동물의 고유한 특질이 녹아있기 때문에 군인은 용감한 피를, 양은 유순한 피를 갖고 있다고 봤다. 차분한 성격인 사람의 피를 주입하면 다혈질인 사람이 얌전해진다는 식이었다. 이런 논리에 따라 프랑스의 의사 장비티스트 드니는 유순한 송아지의 피를 정신질환자에게 주입하기도 했다. 혈액형의 성질을 고려하지 않은 위험한 치료법이었다. 17세기 말 파리 의사회는 수혈을 금지했고, 교황도 수혈 금지 칙령을 선포했다. 다시 수혈이 시작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다. 진정한 의미의 헌혈이 시작된 것은 1901년 란트슈타이너가 ABO식 혈액형을 발견하고, 이후 1914년 최초의 항응고제 소듐 시트로산이 발견된 뒤의 일이다. 


Q. O형 피가 가장 많이 필요하다? 


그렇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가장 많은 혈액형은 A형으로 전체 인구의 34%가 해당한다. O형과 B형은 각각 28, 27%를 차지한다. 하지만 가장 쓰임이 많아 귀한 혈액형은 O형이다. 현대 의학에서는 같은 혈액형을 수혈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모든 혈액형에게 수혈할 수 있는 O형이 필요한 때가 있다. 기본 혈액형 검사를 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출혈이 심한 긴급환자가 있을 때나 혈액형이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는 미숙아에게 수혈이 필요할 경우 등이 그런 예다. 그렇기 때문에 O형 혈액이 귀한 대접을 받는다. 


Q. 헌혈한 피는 혈액은행에 두고 계속 쓸 수 있다? 


아니다. 혈액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우리 몸속을 맹렬히 돌고 있는 혈액도 수명이 있다. 우리 몸을 쉬지 않고 돌고 또 도는 건강한 적혈구의 수명은 120일 정도다. 명을 다한 적혈구는 철분과 다른 성분으로 분해되고 골수에서 재활용된다. 하루에 전체 적혈구의 3%가 죽고 새로 만들어진다. 혈소판은 7일, 백혈구는 3~21일 정도다. 우리 몸 밖으로 나가면 혈액의 수명은 급속도로 줄어든다. 다행히 적혈구는 항응고제가 들어 있는 혈액백(blood bag) 속에서도 35일간을 버틴다. 하지만 한 번 헌혈한 혈액을 영구히 보존할 수 없는 만큼 지속적으로 헌혈하지 않으면 혈액은행은 텅 비게 되고 만다. 


Q. 피의 백혈구 성분이 도움이 된다? 


아니다. 백혈구는 인간의 면역 능력을 책임지지만, 다른 사람 몸에서 나온 백혈구는 적으로 여기고 공격하기 일쑤다. 헌혈한 피는 좁은 필터를 통해 백혈구를 분리하고, 걸러낸 백혈구는 폐기 처리 된다. 

우리가 헌혈을 통해 수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적혈구 덕분이다. 성숙한 적혈구에는 조직적합성항원(HLA)이 없다. HLA의 일치율은 형제간이라도 25%, 남이라면 2만분의 1이므로, 적혈구에 HLA가 있다면 수혈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혈액형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적혈구가 항체를 만나 응집하는 성질 덕분이다. 혈액형 항원항체 검사는 육안으로도 판정이 가능하다. 또 적혈구의 수명이 120일에 달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수혈된 뒤에도 적정 기간 동안 환자 몸에 산소를 공급하고, 수명을 다하면 사라져 환자가 스스로 적혈구를 생산할 수 있게 한다. 


Q. 피에서 원하는 성분만 뽑아 헌혈할 수 있다? 


그렇다. 가장 널리 알려진 헌혈 방법은 혈액 전체를 채혈하는 ‘전혈’이지만, 특정 성분만 추출해 채혈하는 것도 가능하다. 성분채혈기를 통해 필요한 혈소판, 혈장 등만 채혈한 뒤 나머지 성분은 헌혈자에게 돌려주게 된다. 혈소판성분헌혈, 혈장성분헌혈, 혈소판과 혈장을 함께 채혈하는 혈소판혈장성분헌혈이 있다. 전혈의 경우 두 달에 한 번 헌혈이 가능한데, 성분 헌혈의 경우는 2주 뒤에 다시 헌혈을 할 수 있다. 성분 헌혈이 시간은 더 오래 걸린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30~40분은 걸린다. 


Q. 혈소판은 반드시 냉장 보관해야 한다? 


아니다. 혈소판은 보관이 까다롭다. 냉장 보관을 하면 수혈 후 환자 몸에서 생존력이 떨어지므로 실온에서 보관한다. 그냥 실온에 두는 건 안 된다. 응고작용을 하는 혈소판은 평소에서도 늘 뭉치려는 성질이 있고, 한번 뭉치면 다시 떼어낼 수 없기 때문에 응고를 막기 위해 혈소판 부란기라는 장비를 이용해 계속 흔들어주어야 한다. 보관 용기도 특수하다. 표면에 공기가 통하도록 만들어진 특수용기를 사용한다. 게다가 혈소판의 유통기한이 단 5일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중 36시간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검사하는데 쓰인다. 귀하고 귀하신 몸이다. 


Q. 헌혈한 피는 유리 용기에 담아 보관하는 것이 좋다? 


아니다. 헌혈한 피는 모두 플라스틱 백에 담아서 보관한다. 플라스틱의 발명이 헌혈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플라스틱이 발명되기 전에는 유리병에 보관했는데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그 안에 공기가 들어가서 세균이 생기기도 쉬웠다. 반면 플라스틱은 깨지지 않고, 가벼우며, 밀봉되고, 신축성이 있어 유리병보다 훨씬 이점이 많다. 미국의 외과의사이자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 칼 월터가 1947년 플라스틱 혈액용기를 개발했다. 플라스틱 용기는 원심분리를 해도 찢어지지 않아 혈액의 성분 분리가 가능해졌다. 


Q. 헌혈한 피는 모두 수혈에 사용된다? 


아니다. 혈장 성분은 주로 의약품 제조에 쓰인다. 혈장은 알부민, 크라이오, 감마글로불린을 제조하는데 쓰인다. 알부민은 혈액순환기능, 크라이오는 혈우병 치료제, 감마글로불린은 수두, 파상풍 치료제로 쓰인다. 헌혈에 적합지 않아 폐기되는 부적격 혈액은 전체의 4% 정도인데 이중 일부는 연구 개발에 사용되기도 한다. 

헌혈한 피가 곧장 수혈에 사용되는 것도 아니다. 피는 4개의 검체로 나뉘어져 B형 간염, C형 간염, 성인 림프구성 백혈병 바이러스(HTLV), 에이즈, 말라리아와 간기능 검사를 거치고 ABO혈액형과 Rh 혈액형 검사를 마친 뒤에야 적합 판정을 받게 된다. 


Q.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헌혈할 수 없다? 


일부 국가의 경우 그렇다. 광우병 발생 위험국가인 영국에 1~3개월 이상 체류할 경우 헌혈이 제한된다. 혈액 속에서 광우병 바이러스를 식별할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말라리아 발생지에서 일정기간 체류한 경우에도 헌혈 금지한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휴전선 인근과 같이 말라리아 모기가 발견되는 지역에 거주할 경우 헌혈을 금지하고 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지카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관련 지역으로 해외여행 다녀온 사람은 1개월 간 헌혈을 금하고 있다. 그 밖에 헌혈 금지 약물을 복용한 경우에도 헌혈할 수 없다. 

#Blood donation #Artery #Vein #Leukocyte #Erythrocyte #Platelet #헌혈 #동맥 #정맥 #혈액형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반응형
댓글
반응형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