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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實在)가 뭐지?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만약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고 보는 것들을 실재라고 한다면 그 모든 것은 그저 뇌에서 받아들인 전기신호에 불과해.” 


1999년에 세계적인 화제를 몰고 온 영화 ‘매트릭스’에서 전설적 해커였던 모피어스가 한 말이다. 이 영화 속에서 인간은 인공지능이 현실 세계와 똑같이 만들어낸 가상현실 세계를 살아간다. 어찌나 사실적인지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이 가상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다. 


사실 가상현실이라는 기술이 추구하는 원래 목표가 매트릭스와 같은 ‘원격현전’이다. 원격현전이란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조성한 어떤 환경 속에서 실재하고 있음을 경험한다는 의미다. 


많은 언론들은 2016년을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산업의 원년이라고 보도했다. 그만큼 가상현실과 관련한 기술이나 디바이스들의 출시가 풍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 포문을 연 대표적인 행사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이동통신 박람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였다. 


이 행사의 주인공은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가 아닌 VR 기기였다. 한국 기업만 예로 들어도 삼성은 기어 VR과 4D 의자로 360도 입체 영상을 경험할 수 있는 ‘VR 4D 상영관’을 운영했으며, LG는 360도 VR 콘텐츠를 공개해 화제가 됐다.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몰린 부스는 단연코 VR 체험 코너였다. 


이번 MWC에서는 일상생활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VR이 접목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시켰다. 행사에 참석한 페이스북 CEO 마크 주커버그 역시 “VR은 차세대 플랫폼이다”라고 말하며 ‘VR 대세론’에 힘을 실었다. 


사실 VR 산업에 기업의 미래를 걸고 있는 곳 중의 하나가 페이스북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개발자 컨퍼런스 ‘F8 2016’ 행사에서 10년 로드맵을 발표한 페이스북은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을 향후 기업을 이끌어갈 차세대 플랫폼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로 꼽았다. 


즉 향후 10년은 모바일 VR, 소셜 VR과 같이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의 더욱 진보된 기술력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라고 발표한 것. 마크 주커버그는 가상 및 증강현실 서비스들이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이어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2014년 3월, 페이스북이 20억 달러라는 거액에 오큘러스를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큘러스 리프트를 개발한 오큘러스는 VR의 선봉장이라고 일컬어지는 기업이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팔머 럭키라는 청년이 2012년에 개발한 VR 장치로서 머리의 움직임을 감지해 그에 맞는 VR 콘텐츠를 보여주는 헤드셋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VR 헤드셋 디스플레이의 가격이 약 1만 달러에 달했으나 2013년에 출시된 개발자 버전의 오큘러스 리프트의 가격은 299달러에 불과했던 것. 가격의 벽이라는 한계에 부딪쳐 있던 VR 기기에 대중화라는 새로운 길을 낸 것이 바로 오큘러스 리프트였다. 


지난 3월 페이스북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정식 버전의 오큘러스 리프트를 599달러에 출시했다. 예상보다 약간 높은 가격에 기대감이 주춤하긴 했으나 게임을 좋아하는 열성 팬들에게 큰 환영을 받고 있다. 페이스북이 VR에 집착하는 이유는 미래의 소셜 기능이 거기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글과 사진만 공유하는 소셜 미디어 대신 하나의 가상 공간에 모여 함께 식사도 하고 토론도 하는 소셜 미디어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보통 VR 디바이스라고 하면 머리에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HMD)’를 쓰고 시각과 청각만으로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단순한 방식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엔 온몸으로 가상현실을 느낄 수 있는 패키지 형태의 시스템들도 등장하고 있다. 


미국의 스타트업인 ‘AxonVR’이 옷처럼 입을 수 있는 가상현실용 수트와 공중에 뜨는 형태의 외골격 시스템을 조합해 개발 중인 신개념 VR 시스템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시스템은 외골격에 의해 몸이 공중에 뜬 상태에서 수트가 제공하는 가상현실을 통해 산을 오르거나 운동장을 달리는 등의 상황을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전 세계인들이 VR 영상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경기 장면을 고화질 360도 VR 카메라로 촬영해 5세대 이동통신 시범망 등으로 실시간 중계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선수가 착용한 헬멧에 초소형 카메라와 데이터 송신기를 달아 선수 시점에서 촬영한 중계 화면도 앱으로 생중계될 계획이다. 또한 스키점프나 스노보드 등의 경기장을 VR 시뮬레이터로 구현해 일반인도 평창올림픽 코스를 원하는 방향과 각도에서 가상체험 할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디지-캐피털(Digi-Capital)이 올해 초에 발간한 ‘2016 VR․AR보고서’에 의하면 지난해 VR과 AR에 투자된 자금 규모는 6억8600만 달러(약 8200억원)에 이른다. VR과 AR에 대한 투자액은 지난해부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작년 4분기 투자액은 전년 2․분기의 6배에 달했다. 2020년에는 기기 보급과 함께 이를 활용하는 콘텐츠 및 플랫폼의 확산으로 VR과 AR 시장의 매출 규모가 1200억 달러(약 144조원)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VR이 말 그대로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물건과 공간을 말한다면,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은 실제의 현실세계를 배경으로 가상의 정보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AR은 구글 글래스처럼 현실에다 새로운 가상의 물체나 정보를 겹쳐서 보여주는 기술이라고 보면 된다. 이처럼 VR과 AR은 의미가 약간 다르지만 컴퓨터를 통해 만들어진 가상의 정보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동일 범주로 보는 경향이 크다. 시장조사 기관들이 VR과 AR을 합쳐서 전망치를 내놓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와 민간 우주개발기업 스페이스X의 CEO인 엘론 머스크는 최근 공개석상에서 VR 산업의 미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래 인류가 가상 세계가 아닌 진짜 현실에서 살 확률은 10억분의 1에 불과하다.” 매트릭스와 같은 영화에서나 등장하던 VR 세계가 이제는 실제 현실이 되고 있다. 


글 : 이성규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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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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