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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일요일 오후였다. 초보주부 김 씨는 장을 보러 갔기 때문에 당연히 아이들 뒤치다꺼리는 짠돌 씨의 몫이었다. 유통기한이 다 된 우유로 플라스틱을 만들고, 약통에서 오래 전부터 뒹굴고 있던 비타민제를 꺼내 실험까지 했는데도 김 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손에 우유 플라스틱 덩어리를 잔뜩 묻히고, 얼굴에는 비타민제 가루를 덕지덕지 바른 애들을 본 순간 짠돌 씨는 결심했다. 얘들을 목욕시키는 거야! 

“아빠, 비누가 너무 작아졌어. 큰 비누 줘~.” 

욕조에서 비누를 갖고 놀던 딸 막희가 칭얼댔다. 목욕하기 직전에 개봉했던 새 비누가 어느새 작게 줄어든 것을 보며 짠돌 씨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저 아까운 비누를! 이런 짠돌 씨의 속마음도 모르고 막희는 계속 큰 비누를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새 비누를 꺼내는 건 ‘이 한 몸 바쳐 아끼리’가 신조인 짠돌 씨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짠돌 씨의 머릿속에 아이이어가 떠올랐다. 그래 저 비누를 크게 만들자! 

“그럼 이 아빠가 작은 비누 조각들을 커다랗고 물에 잘 뜨는 비누로 바꿔줄게!” 

“아빠 그런 것도 할 수 있어?” 

“이 아빠를 무시하지 말라구. 자 몸 잘 닦고 나오렴.” 

[실험방법] 

1. 쓰던 비누를 작게 자르거나 작은 비누 조각들을 모은다. 부푸는 정도의 비교를 위해 새 비누를 함께 준비한다. 

2. 전자레인지 바닥에 물에 적신 수건을 깔고 그 위에 비누를 올려놓는다. 서로 안 닿을 정도로 충분한 거리를 둔다. 

3. 1분 30초~2분 정도 가열한다. 

4. 부풀어 오른 비누를 전자레인지 안에서 그대로 식힌다. 

5. 다 식은 비누를 꺼내 물에 띄워본다. 잘 뜨면 제대로 만들어진 것. 

※ 전자레인지에 남은 비누 거품과 향은 소주 약간으로 닦아내면 깨끗하게 사라집니다. 

“우와 아빠 신기해. 비누가 팝콘같이 막 커다래져!” 

“이건 전자레인지의 열이 비누 속의 물을 수증기로 만들기 때문이야. 수증기는 물보다 훨씬 부피가 커서 비누를 커다랗게 만드는 거지. 팝콘이랑 똑같은 원리란다.” 

“그럼 팝콘처럼 프라이팬 위에서도 튀겨져?” 

“비누는 열에 약해서 프라이팬 위에서는 그대로 녹아버려. 단단한 옥수수와는 다르단다.” 

“그런데 왜 전자레인지 안에서는 멀쩡한 거야?” 

“그건 전자레인지에 쓰이는 ‘마이크로파’의 성질 때문이야. 마이크로파는 물 분자가 제자리에서 빙빙 회전하게 만드는 전자파야. 마이크로파를 받은 물 분자는 1초에 무려 24억5000만 번이나 회전한다니까 엄청나지? 마이크로파가 비누의 성분은 안 건드리고 안에 있는 물만 마구 흔들어서 뜨겁게 한 다음 수증기로 만들어준단다.” 

“그런데 작은 비누조각은 크게 부풀었는데, 새로 뜯은 비누는 왜 조금밖에 부풀지 않아?” 

“쓰던 비누에는 수분이 많이 함유돼 있겠지? 게다가 작은 조각이라서 마이크로파가 잘 침투하니까 잘 부풀지. 새 비누는 수분이 적은데다가 커서 마이크로파가 잘 침투하지 못해 부풀지 않은 거야.” 

“아~ 그렇구나.” 

“그런데 아빠. 이렇게 부푼 거랑 비누가 물에 뜨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어?” 

“봐봐. 이 비누 굉장히 가볍지? 공기가 많이 들어있어 크기에 비해서 무게가 덜 나가지. 그래서 딱딱하고 무거운 다른 비누와 다르게 물에 동동 뜬단다. 슈퍼에서 파는 비누 중에도 이런 게 있어.” 

“거기도 공기가 많이 들어있는 거야?” 

“응. 그 비누는 1878년에 미국의 커다란 기업이 만들었어. 처음에는 그냥 ‘하얀 비누’라고 불렀어. 그런데 비누를 만들던 사람이 실수를 한 거야. 시간을 잘못 계산해서 공기를 너무 많이 넣은 거지.” 

“그걸 그대로 팔았어? 그거 나쁜 사람들이네.” 

“아니, 그 실수가 오히려 사람들이 원하는 걸 정확히 짚어준 꼴이 됐지. 그땐 사람들이 강에서 목욕을 할 때야. 강에 비누가 가라앉으면 찾기 어렵겠지?” 

“어…. 물에서 그냥 비누가 계속 녹으면 환경도 오염되지.” 

“(헉! 역시 우리 아이는 영재?) 맞아. 그래서 사람들은 강에 가라앉아 찾기 어려운 비누보다 물에 둥둥 뜨는 비누를 더 좋아했어. 비누를 만든 회사는 아예 공기가 많이 들어간 비누를 만들기 시작했어. 그게 우리가 아는 ‘아이보리 비누’야.” 

“아하~. 그렇게 심오한 뜻이. 아빠, 호일이 붙어 있는 이 비누도 팝콘으로 만들자!” (짠돌 씨 집은 비누를 아끼기 위해 한쪽 면에 호일을 붙여 놓고 쓴다.) 

“호일이 붙은 건 안 돼. 호일은 마이크로파를 반사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불이 붙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단다. 절대로 호일은 전자레인지에 넣으면 안 돼. 알겠지?” 

“네~. 아빠, 이제 비누 팝콘 물에 띄워보자~” 

“잠깐! 지금은 찐득찐득하니까 함부로 안만지는 게 좋아. 공기가 잔뜩 들어간 채로 잘 마를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자~.”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던 도중 어린 딸은 이미 비누를 욕조에 넣어 버린 상태였다. 천진난만한 딸의 행동 때문에 욕조 뿐 아니라 싱크대와 그릇에까지 비누거품투성이. ‘실험한 주말은 그냥 사라진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새기며, 짠돌 씨는 저녁 늦게까지 욕실과 싱크대를 닦고 또 닦았다. 짠돌 씨의 근육통은 다음 주 내내 회복되지 않았지만 얼굴이 비칠 정도로 윤이 나는 집안 풍경에 아내 김 씨는 매우 만족했다. (글: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공기를 집어넣어 부피를 크게 하고 재료의 성질을 바꾼 제품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음식 중에는 공기를 집어넣어 부드럽게 만든 소프트아이스크림, 초콜릿 등이 있고, 재료 중에도 공기를 집어넣어 가볍게 한 발포 플라스틱 등이 널리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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