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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87년 작 ‘태양의 제국’에는 짐이라는 영국인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감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 상하이의 외국인 수용소에 갇힌 짐의 시선을 빌려 모든 전쟁에 대한 반대의 뜻을 담아낸다. 특히 전투기 조종사를 꿈꾸는 짐이 일본군의 제로 전투기와 미군 P-51 무스탕의 피 튀기는 공중전에 열광하는 장면에서는 전쟁의 참혹함이 역설적으로 묻어난다.
스필버그 감독이 비행기를 전쟁의 중요한 상징물로 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은 공중 전력에 의해 승패가 갈렸다고 할 정도로 ‘비행기의 무기화’가 비약적으로 진척된 사건이다. 이 가운데 비행기의 성능도 일취월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발달한 항공기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라이트 형제가 최초의 동력비행기 ‘플라이어 1호’를 띄우고 40년이 흐른 1943년, 독일군은 당시 존재하던 모든 전투기를 능가하는 가공할 만한 전투기를 개발했다. 주인공은 ‘메사슈미트262’(Me262). Me262는 제트엔진을 장착한 최초의 비행기로 최고 시속이 870km에 달했다. 당시 어느 전투기도 따라 올 수 없었던 비행 속도는 연합군 조종사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Me262가 실전 투입된 1944년에 가장 속도가 빨랐던 기종은 미군의 P-51 무스탕으로 최고 시속이 700km에 불과했다.
Me262는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기관포를 쏘기 적절한 위치를 차지하거나 적에게 꼬리를 잡혔을 때 이를 떼어내는 능력이 당시 어떤 전투기보다 우월했다. Me262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가던 1944년에 투입되는 바람에 전쟁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제트기의 가공할 만한 성능은 충분히 입증했다.
비행기에 제트엔진을 장착한 것은 여러 모로 혁신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엔진 앞부분에 장착된 터빈에서 빨아들인 공기를 압축해 연소실에서 연료를 섞어 폭발시키는 제트엔진은 같은 무게의 피스톤 엔진에 비해 훨씬 높은 추진력을 지녔다. 게다가 피스톤 엔진이 돌리는 프로펠러가 음속 이상의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트엔진은 비행기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유일한 대안이 됐다.
Me262가 만든 족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주날개 끝이 뒤를 향하고 있는 최초의 ‘후퇴익’도 이 때 등장했다. 후퇴익은 마하 0.8이 넘는 속도에서 공기저항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같은 출력의 엔진이라면 더 빠른 비행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Me262에 후퇴익이 채택된 뒤 사실상 모든 전투기는 후퇴익으로 설계됐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직선익은 날개 전체에 기류가 고르게 흐른다. 때문에 안정적인 비행이 가능했다. 순간적으로 기류가 사라지는 ‘실속’을 방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제트기 시대에 자리를 내 준 셈이다.
1920년대에 아돌프 부즈만이라는 독일 과학자가 제안한 후퇴익은 날개 위의 공기 흐름이 날개 앞전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공기의 속도에 지배 받는 사실을 이용한 구조다. 날개를 뒤로 젖히면 날개 앞전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공기의 속도가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날개 윗면의 공기 흐름이 빨라진다는 사실을 적용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비행기 발달사에 남긴 기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내의 압력을 높이는 여압 기술이 등장했다. 엔진의 공기압축기에서 뽑아낸 고온고압의 공기를 기내에 조금씩 집어넣는 이 기술은 기압과 기온을 높이고, 습도를 종합적으로 관리한다. 1만m 상공의 기온은 영하 56.5도인데다 기압은 지상의 25%, 습도는 0.001% 수준이다. 여압기술이 적용되지 않으면 사람이 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여압은 장거리 전략 폭격기를 운영하던 제2차 세계대전 당사국들에게 필수적인 기술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 주둔하던 B-17 항공대의 임무를 다룬 영화인 ‘멤피스 벨’에는 비행 중에 승무원 전원이 산소마스크를 끼고 추위와 싸우는 장면이 등장한다. B-17은 여압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전 말기에 등장한 B-29는 완벽한 여압체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전투 환경은 이보다 훨씬 좋았다. 승무원은 추위가 아니라 적과 싸우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비행 가능 고도가 9100m에 이르렀기 때문에 당시 존재하던 전투기 대부분이 B-29를 위협하지 못했다. 실제로 일본 본토 폭격에 나섰던 B-29에 일본 공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처럼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제트엔진, 후퇴익, 여압과 같은 항공기술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생존을 건 싸움 가운데 등장했다. 어떤 이는 전쟁이 기술의 발전 경로를 왜곡한다고 비판하지만 우리가 10시간 만에 쾌적한 환경의 여객기 안에서 태평양을 횡단할 수 있는 건 이런 특수한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은 분명 찬양할 일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인해 빨라진 기술 진보의 속도에는 경탄할 만하다. (글 : 이정호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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