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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비언의 해적 2편 끝부분에서 잭 스패로우 선장이 거대한 바다 괴물 크라켄에 잡아먹히고 해적들이 그를 구하겠다고 다짐할 때부터 나는 그들이 잭 스패로우를 어떻게 구해올 지 정말 궁금했다. 

그리고 누구 말대로 “영리한 것인지 단지 운이 좋은 것인지 예측 할 수 없는” 잭 스패로우의 기지로 해적선 ‘블랙펄’을 뒤집음으로써 세상의 끝을 벗어나 부활하는 장면을 보게 됐다. 섹시한 조니 뎁, 완소남 올랜드 블롬, 귀여운 키이라 나이틀리, 그리고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탄생된 바다괴물 크라켄과 멋진 해상 전투신까지…. 정말 볼거리 많고 재미있는 영화지만 이놈의 직업병이 뭔지 블랙펄을 뒤집는 장면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린다. 과연 영화의 방법대로 블랙펄을 뒤집을 수 있을까? 

배를 뒤집으려면 먼저 배가 뒤집히지 않고 떠 있을 수 있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 배가 부력 때문에 물 위에 떠 있다는 건 다 알고 있겠지만 사실 이 부력은 배가 뒤집히지 않도록 하는 역할도 한다. 예를 들어 배가 왼쪽으로 기울면 왼쪽은 잠긴 부피가 늘고 오른쪽은 잠긴 부피가 준다. 즉 왼쪽은 오른쪽보다 부력이 세져 배를 원래 방향대로 돌려놓는 쪽으로 힘이 가해지는 것이다. 한번 기울어진 오뚝이가 흔들리다가 바로 서는 것처럼 배도 흔들리다가 똑바로 서게 된다. 

게다가 배에는 뒤집어지지 않기 위해 특수한 장치가 달려있다. 블랙펄이 뒤집어질 때 배의 바닥이 살짝 스쳐 지나가는데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은 배의 바닥과 측면이 연결되는 굽은 부분에 얇은 판이 길게 붙어 있는 것을 봤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배 밑바닥이 어둡고 판의 크기는 작다.) 이를 ‘빌지킬’이라고 부른다. 배의 바닥에 빌지킬이 붙어있으면 배가 기울어지려고 할 때 그만큼 물을 더 많이 밀어내야 하기 때문에 배의 흔들림이 작아진다. 

블랙펄에는 설치되지 않았지만 어떤 배들은 ‘안티롤링탱크’라는 장비를 이용해서 흔들림을 줄여주기도 한다. ‘안티롤링탱크’는 커다란 U자형 관을 배에 설치하고 그 안에 물을 채워놓은 장비다. 배가 한쪽으로 기울면 그 안의 물도 같은 움직이는데 U자형 관의 모양을 잘 조절하면 오히려 배가 왼쪽으로 기울 때 물은 오른쪽에, 배가 오른쪽으로 기울 때 물은 왼쪽에 있도록 할 수 있다. 즉, 배의 기울어진 방향과 반대로 물이 이동하게 해서 반대쪽의 무게가 증가하여 배가 원래 위치로 쉽게 돌아오게 하는 장비다. 

그럼 이렇게 뒤집히지 않도록 설계된 배를 뒤집는 것이 가능할까? 블랙펄의 정확한 규격을 모르니 “사람들의 몸무게는 얼마, 부력은 얼마…”하는 식으로 계산해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이론적으로는 어쨌든 잭스패로우가 배를 뒤집는 일은 가능하다. 

영화를 보면 배를 뒤집기 위해 해적들이 배의 좌우로 열심히 뛰어다닌다. 한쪽으로 뛰어갔을 때 뒤집히지 않던 배가 왜 좌우로 계속 뛰어다니면 뒤집어질까? 여기에는 ‘공진’이라는 물리 현상이 숨어있다. 공진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놀이터에 있는 그네를 떠올려 보자. 다 알겠지만 그네를 밀 때 높이 올라가게 하려면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그네가 뒤로 왔다가 앞으로 가는 순간이 힘껏 밀어야 할 타이밍이다. 이 타이밍을 잘 맞추면 작은 힘으로도 그네를 높이 올릴 수 있다. 

블랙펄을 뒤집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해적들의 무게로 배를 조금밖에 기울일 수 없었지만 배가 흔들리는 주기에 맞춰 힘을 주면 배의 흔들림은 점점 커지고 결국 전복시킬 수 있다. 영화를 보면 바르보사 선장이 “파도에 맞춰 움직여”라고 말하지만 파도가 아니라 “배의 흔들림에 맞춰 움직여”라고 말해서 공진이 일어나게 해야 배를 뒤집을 수 있을 것이다. 뭐 워낙 긴박한 상황이니 이 정도야 봐줄 수 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 배가 기울어질 때 같은 방향에 있어야 힘을 더 실어 공진이 발생하게 할 수 있을 텐데 어찌된 연유인지 잭 스패로우와 해적 친구들은 오히려 반대편에 서 있다. 배가 왼쪽으로 기울 때 오른쪽 끝에 매달려 있고, 오른쪽으로 기울 때 왼쪽 끝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배를 뒤집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흔들리는 배를 똑바로 서도록 해주는 셈이다. 이 경우 잭스패로우와 해적들은 마치 안티롤링탱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잭스패로우가 진정 배를 뒤집고 싶다면 영화와는 반대로 배가 기울어지는 쪽에 있어서 배가 더욱 기울어지도록 하는 회전력을 줘야 한다. 

과학으로 들여다 본 이 영화의 실체는 잭 스패로우와 해적들이 배를 뒤집는데 실패해서 현실 세상에 돌아오지 못하고 영원히 배 위에서 뛰어다닌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하기야 ‘캐리비언의 해적’은 판타지 영화니 물리 현상인들 반대로 일어나지 못하겠는가. 단지 배 만드는 사람으로서 멋진 블랙펄이 뒤집어지는 장면이 슬퍼 괜히 ‘딴지’를 걸게 됐다. 잭 스패로우 선장과 친구들의 앞날에 건승을 빈다. (유병용 ‘과학으로 만드는 배’ 저자)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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