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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답답함에 찌든 이들에게 황금 같은 피서철이 왔다. 그러나 도심을 떠난다는 흥분도 잠시, 꽉 막힌 고속도로를 지나 인파로 발 디딜 틈 없는 해변 한 쪽에 몸을 누이고 있으면 피서도 또 다른 고생이기 십상이다. 게다가 어딜 가도 여전한 바가지요금 시비는 모처럼의 좋은 기분을 망친다. 스트레스를 풀러 떠났던 피서지에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돌아오는 셈이다. 


최근 서울 한 복판에 설치된 대형 빙판은 그래서 더욱 눈길을 끈다. 지난달 말부터 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작된 아이스발레 공연은 시원한 공기와 좋은 볼거리를 원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공연이 열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는 본래 아이스공연장이 없다는 사실. 마룻바닥 위에 특수한 설비를 갖춘 뒤 얼음을 부어 빙판을 만든 것이다. 8월의 도심에서 한겨울에나 가능한 빙판이 등장할 수 있었던 과학 원리를 알아보자. 


세종문화회관에 설치된 인공 빙판이 국내에 처음 선보인 건 지난 2000년 초다. 러시아 공연단이 국내에서 호두까기 인형을 비롯한 아이스발레 공연을 시작하면서 ‘얀쯔맷 이동식 아이스링크’라고 불리는 설비도 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얀쯔맷 이동식 아이스링크는 마룻바닥으로 이뤄진 보통 공연장을 24시간 만에 아이스링크로 바꿔 놓는다. 


얀쯔맷 이동식 아이스링크의 기본적 얼개는 가로 세로 각 15m, 깊이 14cm에 이르는 커다란 ‘그릇’ 안에 얼음과 물을 쏟아 부어 빙판을 만드는 것이다. 관건은 만들어진 얼음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이다. 공연장 기온을 영하 수십 도로 내려 관객을 추위에 떨게 할 수는 없기 때문. 


비밀은 얼음 사이를 보일러 배관처럼 관통하는 파이프에 있다. 이 파이프 안을 영하 15도를 유지하는 부동액이 분당 250ℓ 씩 움직이면서 얼음 전체를 차갑게 유지한다. 기본적인 원리는 온돌방 바닥에 파이프를 깐 뒤 따뜻한 물을 순환시켜 방 안을 데우는 것과 같다. 다만 파이프 안에 따뜻한 물이 아닌 찬 부동액이 흐르는 것이다. 


부동액이 정상적으로 흐르는 것이 확인되면 총 5톤의 얼음과 물을 쏟아 붓는다. 20분마다 얼음 표면이 매끄러워지도록 물을 뿌리기를 12시간 동안 하면 얼음의 구조가 고르고 잘 미끌어지는 최상의 빙질이 만들어진다. 얼음이 그리고 공연 시작 직전까지 울퉁불퉁해진 얼음 표면을 다듬는다. 이 때 빙판의 위아래는 마치 샌드위치처럼 합판과 비닐을 여러 겹 씌워 공연장을 보호한다. 


최근엔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공 얼음’도 등장했다. 지난 4월 국내의 한 회사는 얼음판 대용을 쓸 수 있는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었다. 폴리에틸렌 수지에 특수 윤활유를 섞어 만든 가로세로 1.5m 정도의 얇은 플라스틱판이다. 이 판은 표면이 매우 미끄럽기 때문에 타일처럼 넓게 깔면 그 위에서 겨울 스포츠인 스케이트를 실제 얼음 위에서와 똑같은 기분으로 즐길 수 있다. 


인공 얼음은 영하 31~영상 65.5℃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뜻. 가장 중요한 ‘미끄러지는 성질’은 실제 얼음의 최고 상태의 95% 수준을 꾸준히 유지한다. 시간이 지나면 빙질이 급속히 떨어지는 일반 얼음과 다른 장점이다. 


게다가 비용도 적게 든다. 993m2 크기의 빙상장을 기준으로 할 때 설치비와 유지비가 보통 얼음판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하루 수차례 링크를 보수해야 하는 일반 빙판에 비해 3일에 한 번 점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판이 훼손되면 그 부분만 뒤집어 깔면 된다. 양쪽 면이 다 훼손됐을 때 그 부분만 새 것으로 교체하면 된다. 


인공 얼음은 현재 목동 아이스링크 건물 내에 설치돼 있다. 빙판을 유지하기 위해 온도를 낮게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가벼운 티셔츠 하나만 입고도 스케이트를 탈 수 있다. 앞으로 인공 얼음이 더 많이 보급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계절과 날씨에 관계없이 겨울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냉장고라는 저장장치가 발명되기 전까지 얼음은 귀중품이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얼음을 가장 더운 음력 6월에 당상관 이상의 고위관리에게 지급한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이제는 계절에 상관없이 얼음판을 만들 수도 있으며 얼음판과 비슷한 인공 얼음 위에서 겨울 스포츠를 여름에 즐기게 됐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혹시 아는가. 10년 뒤 동계올림픽은 열대지방에서 열리게 될지. (글 : 이정호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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