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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이 없다던 나폴레옹도 결국 러시아의 추위 때문에 패전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극점에 도달하려던 무수한 시도 역시 추위 때문에 번번이 좌절됐다. 극지방은 추위가 생명과 직결된 곳. 남극은 최대 영하 75℃까지, 북극은 최대 영하 53℃까지 내려간다. 극지방에서 살얼음을 잘못 디뎌 물속에 한번 빠지면 5분 내 몸을 말리지 않는 이상 얼어 죽는다. 맨손으로 10분 이상 노출되면 손은 기능을 상실해 잘라내야 할 정도다.
그런데 이런 공포의 추위에도 옷 하나 입지 않고, 보일러 한번 틀지 않고 꿋꿋하게 사는 생물들이 있다. 그것도 생각 이상으로 많다. 극지방에는 분해자인 세균부터 최상위 포식자인 북극곰까지 제대로 균형 잡힌 생태계가 존재한다. 과연 극지방에 사는 동물들은 어떻게 추위를 견디며 생존할 수 있을까?
우선 극지방 동물은 여름이 있기 때문에 생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극지방에는 추운 겨울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해다. 극지방의 여름은 밤이 없다. 햇볕은 약하지만 끊임없이 쬐기 때문에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 반팔 차림으로 지낼 수도 있다. 여름이 되면 극지방의 식물들은 일제히 자라고 이들을 주식으로 삼는 초식동물도 급격히 번성한다. 이들에 기생하는 모기와 진드기 수가 늘어나는 것도 우리나라의 여름과 다르지 않다.
이때 영양분을 부지런히 비축하지 않는 동물은 다음 겨울을 보장할 수 없다. 이건 극지방이든 온대지방이든 겨울이 있는 장소면 마찬가지다. 겨울에는 여간해서 물속에 들어가지 않는 북극곰도 여름에는 열심히 자맥질을 해 물범을 사냥한다. 남극의 펭귄도 기나긴 겨울에는 주로 생식과 양육을 하는데 보내고 여름에 활발한 사냥 활동을 한다. 이들은 거의 고단백 식사를 하며 몸의 크기를 키운다. 거대한 체구는 몸의 부피 당 표면적을 줄여 추위를 잘 견디게 한다. 몸에 비축한 영양분은 추운 겨울을 보낼 든든한 밑천이 된다.
그러다 추운 겨울이 오면 극지방 동물의 능력이 본격적으로 발휘된다. 예를 들어 원래 추운 지방에 살았던 젖소는 영하 10도~영상 10℃가 살기 좋은 온도인데 반해 한우는 살기 좋은 온도가 10~20℃다. 이처럼 같은 종에도 살기 좋은 온도가 다르듯 극지방 동물은 태생적으로 낮은 온도에 몸이 최적화돼 있다.
우선 극지방 생물들은 몸속에 천연 부동액을 갖고 있다. 차가운 물속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물고기는 체액을 얼지 않게 하는 ‘부동단백질’을 갖고 있다. 심지어 혈액 속에 적혈구가 없는 물고기도 있다. 적혈구가 추위로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없는 것이다. 대신 이들은 산소가 풍부한 차가운 물속에서 직접 산소를 받아들인다. 하등생물인 크릴이나 미생물도 체내에서 ‘저온자극유도단백질’(cold shock protein)을 만든다. 저온자극유도단백질은 동물의 활동성을 감소시키고 혈액의 어는점을 낮춘다.
또 추위를 견디기 위해 두꺼운 옷을 갖고 있다. 동물에게 옷은 바로 털과 가죽이다. 얼어붙은 북극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하프물범의 몸은 귓바퀴도 없을 정도로 둥글둥글하다. 이런 몸은 표면적을 최소화해 추위를 줄인다. 매끈한 표피 아래는 두꺼운 지방층이 있다. 마치 두꺼운 내의 수십 벌 겹쳐 입은 것과 같다. 북극곰도 푹신한 털가죽아래 두꺼운 지방층이 있다. 북극곰의 흰 털은 빙판 위에 쉬고 있는 물범에 몰래 접근하기 위해서지만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흰털은 북극의 여름 내내 내리쬐는 태양빛을 반사시키기 위해서다. 여름과 겨울에 체온 차이가 너무 심하면 항상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러나 두꺼운 털가죽이 덮지 못하는 부위가 있다. 극지방 동물은 이런 취약 부위를 위해 특별대책을 세워뒀다. 하프물범은 온 몸이 두꺼운 지방층으로 둘러 싸여 있지만 단 한 부위, 눈은 무방비다. 따라서 하프물범은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면 반사적으로 ‘순막’이라는 천연 물안경을 쓴다. 시야에 제한은 생기지만 눈을 보호할 수 있다. 비록 얼음 밖으로 숨을 쉬려고 나올 때 이 순막 때문에 잘 볼 수 없어 북극곰의 사냥감이 되지만 말이다.
펭귄에게 취약 부위는 발바닥이다. 펭귄은 발바닥을 위해 ‘원더네트’(wonder net)라는 특수혈관계를 갖고 있다. 이 원더네트는 한 마디로 ‘열교환기’라고 할 수 있다. 무수한 모세혈관 다발로 된 원더네트를 거치면서 심장으로부터 오는 따듯한 동맥피는 적당히 차가워지고 발끝에서 올라오는 정맥피는 적당히 따뜻해진다. 발바닥 온도는 몸보다 낮은 수준에서 얼지 않을 만큼 적당한 수준을 유지한다. 새들의 발은 사실 냉혈동물의 조직과 비슷해 추위 자극에 둔감한 편이다.
극지방 동물이 추위를 견디는 마지막 비법은 한데 뭉치는 것이다. 펭귄들은 보통 한곳에 빽빽이 모여 칼바람을 이겨낸다. 추위를 이겨낼 능력이 약한 어린 펭귄일수록 무리의 중앙에 모인다. 이렇게 모이면 추위에 노출되는 부위를 줄이고 체온을 나눌 수 있다. 물범들도 떼를 지어 다닌다.
이 모든 것으로 무장하였더라도 지속적인 한파에 버틸 동물은 하나도 없다. 본능과 지혜로서 겨울 한때의 추위와 어두움을 이겨내면서 따듯하고 풍요한 여름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인간도 그렇듯이 희망은 동물들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원천이다. (글 : 최종욱 야생동물 수의사)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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