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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아과 의사 테라사와 마사히코는 그의 저서 ‘아이들의 병이 낫지 않는다’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약이 듣지 않거나 같은 병을 반복해서 앓는 아이들이 급격히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12년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이염 같이 예전에 쉽게 나았던 병이 점점 낫기 힘들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왜 잘 낫던 병이 낫기 힘들어졌을까. 가장 큰 이유는 인류의 ‘대세균무기’인 항생제의 위력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항생제에 저항성을 가진 ‘항생제 내성균’은 점점 늘고 있다. 심지어 예전에 완전히 섬멸했다고 생각한 병균도 더 강력해진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다. 인류는 내성균의 역습을 이겨낼 수 있을까? 


세균에게 일방적으로 패했던 인류가 ‘무기’를 갖게 된 지는 80년도 안된다. 1928년 스코틀랜드 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리움(penicillium) 속의 곰팡이에서 추출한 페니실린이 최초의 항생제다. 페니실린은 2차 세계대전 후 대량생산돼 세균성 질병 치료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뒤로 스트렙토마이신, 테트라사이클린, 반코마이신 같은 다양한 항생제가 쏟아져 나왔다. 


페니실린에 이은 항생제의 개발로 과학자들은 앞으로 수십년 내에 모든 세균성 질병을 정복하리라 낙관했다. 그러나 항생제 내성균의 등장으로 이 예측은 빗나갔다. 페니실린은 내성균이 워낙 많아져 거의 쓸 수 없는 항생제가 됐고, 다른 항생제들의 내성균 비율도 차차 높아지는 추세다. 


대표적인 항생제 내성균은 ‘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이다. 세균이 포도송이 모양으로 모여 자라기 때문에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이 세균은 폐, 소화기관, 비뇨기관, 피부 등 몸의 거의 모든 곳에 살면서 질병을 일으킨다. 폐렴, 식중독, 관절염, 골수염은 물론 아토피까지 일으키는 아주 골치 아픈 세균이다. 


애초 포도상구균은 페니실린으로 치료할 수 있었다. 그러나 페니실린 사용이 늘며 페니실린을 분해하는 포도상구균이 생겼다. 과학자들은 이를 대체할 새로운 항생제 메티실린을 개발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이 메티실린에 내성을 가진 ‘메티실린내성포도상구균’(MRSA)이 등장했다. MRSA를 퇴치할 유일한 수단은 반코마이신 뿐. 반코마이신은 현재까지 인류가 가진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항생제다. 세균의 진화 속도는 놀라워서 최근 반코마이신에 내성이 생긴 ‘반코마이신내성포도상구균’(VRSA)까지 등장했다. 


VRSA에 감염되면 더 이상 치료방법이 없다. 두려운 사실은 이 불치의 병이 손쉽게 전염된다는 사실이다. 2005년 질병관리본부의 자료에 따르면 포도상구균에 감염된 대학병원 환자 중 MRSA의 비율이 69%나 될 정도로 우리나라는 내성균 위험 국가다. 현재 우리나라에 VRSA로 의심되는 보고는 단 한건이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VRSA가 언제 창궐할지 장담할 수 없다. 


항생제 내성균은 왜 생길까? 사실 ‘항생제 내성균이 생긴다’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항생제 내성균은 생긴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세균은 전체 유전자 수가 작고 워낙 자주 번식하기 때문에 다양한 돌연변이종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페니실린을 분해하는 효소를 만들어 페니실린을 무력화하는 세균이 수백만 마리의 세균 중에 한둘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평소 이들은 다른 세균들과 똑 같았다. 그러나 항생제가 투여되면 다른 세균들은 다 죽고 이들만 살아남는다.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살아남은 이들을 죽이지만 끝까지 살아남는 경우가 있다. 항생제를 자주 쓰거나, 쓰다 말다를 반복하면 내성균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 살아남은 이들은 조용히 때를 기다리다 번식하기 좋은 조건이 되면 자신의 자손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 내성균의 후예들은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항생제를 투여해도 더 이상 죽지 않는다. 즉 항생제를 많이 쓸수록 항생제 내성균이 생길 가능성도 크다. 역설적이게도 병을 치료하는 병원이 내성균이 발생하기 가장 쉬운 장소가 된다. 


그럼 내성균에 대항할 방법은 없을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새로운 항생제를 만드는 것이다. 세균의 세포벽을 자라지 못하게 하거나 단백질 합성을 방해하는 현재 항생제 대신 다른 방법으로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가 개발되고 있다. 메티실린이 페니실린을 대치한 것처럼 반코마이신을 대치할 차세대 항생제도 곧 나올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항생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항생제 관리다.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항생제 남용 국가’ 1위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 우리는 모르는 새 꽤 많은 항생제를 섭취하고 있다. 저항성을 높이기 위해 사육하는 가축을 항생제가 든 음식을 먹여 키우기 때문이다. 쇠고기, 돼지고기 등의 고기는 물론 벌꿀 같은 기호품에조차 항생제가 들어간다. 항생제 불감증이 정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 


우리 몸은 면역기능이 있어 대부분의 질병은 자연적으로 치료된다. 며칠 빨리 낫자고 무리해서 항생제를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하루에 5번 이상 손을 씻도록 간단한 생활 습관만 바꿔도 세균성 질병에 걸릴 확률은 절반 이상 줄어든다. 항균비누 같은 항균제품도 내성균을 만들 수 있으므로 장기간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꼭 필요한 곳에만 항생제를 쓰도록 강력한 관리가 필요한 때다.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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