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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 남자 100m에 세계신기록이 달성됐다. 이탈리아 국제육상그랑프리에서 자메이카의 아사파 파웰은 9초74의 기록으로 2년 전 자신이 세웠던 세계기록을 0.03초나 앞당겼다. 불과 2주 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미국의 타이슨 가이에 밀렸던 파웰은 이번 세계기록으로 무너진 자존심을 세웠다.
파웰의 기록을 시속으로 환산하면 36.96km. 1초에 10.27m를 달린 셈이다. 10초 안에 승부가 갈리는 남자 100m 경기는 수많은 육상 종목 중에서도 특별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람’을 가리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기록을 단 100분의 1초라도 단축하기 위해 선수와 함께 과학자도 뛰고 있다.
100분의 1초를 다투는 100m에서 출발 반응속도는 기록 달성의 첫 단추다. 이론적으로 가능한 최소 시간은 0.1초. 인간이 귀를 통해 받아들인 청각신호가 뇌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 0.08초에다가 뇌가 판단해 근육을 움직이는 것까지 감안하면 0.1초 이내로 줄이기 힘들다는 결론이다. 따라서 육상에서 0.1초 이내에 출발하면 부정 출발로 간주한다.
100m 선수들은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이 반응속도가 빠르다. 동일한 자극을 반복해서 받으며 훈련하면 해당 신경섬유가 굵어져 신호의 전달 속도가 빨라지고 뇌가 판단을 내리는 시간도 줄어든다. 세계적인 100m 선수들의 출발 반응속도는 0.1~0.2초. 이번에 파웰은 0.137초 만에 출발했다. 최고 기록은 1995년 영국의 린포드 크리스티가 세운 0.110초다.
출발 반응속도는 어떻게 측정할까? 100m 선수들이 출발할 때 밟고 있는 ‘스타팅 블록’에는 압력을 측정하는 센서가 달려있다. 즉 출발 총성이 울린 시점과 압력이 급격한 변화가 있는 시점(출발한 시점)의 시간을 측정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1번 레인 옆에서 출발 총성을 울리기 때문에 약 10m 떨어진 8번 레인 선수는 약 0.02초의 손해를 본다는 것. 1번 레인에 가까이 있는 편이 조금이나마 유리하다.
출발점을 지나 선수들이 질주하기 시작한다. 발은 트랙을 박차고, 온몸은 공기를 가른다. 따라서 트랙과 바람은 100m 기록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지난 2007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 나가이 육상경기장은 특별한 트랙으로 대회 전부터 눈길을 끌었다. 이른바 ‘고속 트랙’이다.
보통 육상 트랙에는 딱딱한 층과 부드러운 층의 폴리우레탄이 2중으로 깔린다. 그런데 이번에 깔린 트랙은 3중 구조다. 기술 보안 문제로 정확한 성분을 알 수는 없지만 ‘조정층’이라고 부르는 부위가 가운데 들어갔다고 한다. 이 조정층은 다리를 딛었을 때 충격을 감소시켜 줬다가 다리를 뻗을 때 그 힘을 돌려준다. 결과적으로 힘을 적게 들이고도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해준다는 뜻이다. 또 가장 표면의 특수코팅은 일반 트랙보다 온도를 7℃ 차갑게 유지시켜 쾌적한 달리기를 보장한다.
그러나 트랙보다 중요한 조건은 바로 바람이다. 바람은 100m 기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선수들이 맞바람이나 옆바람을 맞으며 달리면 기록이 떨어진다. 100m 달리기 직전 뒷바람이 불어줘야 좋은 기록을 기대할 수 있다. ‘뒷바람 없이 100m 세계기록은 나오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 이번 이탈리아 대회에서도 초속 1.7m의 뒷바람이 불었다.
그렇다고 뒷바람이 너무 세도 안된다. 초속 2m을 초과하는 뒷바람이 불면 기록은 무효가 된다. 초속 2m의 뒷바람이 불면 남자 선수는 0.1초, 여자 선수는 0.12초 기록 단축 효과가 있다고 한다. 0.01초 기록 단축도 힘든 100m 경기에서 0.1초면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이 이상의 효과는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50m 지점, 높이 1.22m에 설치된 ‘풍속측정계’로 출발 신호가 떨어진 뒤 10초 동안 측정한다.
바람과 연관된 아쉬운 기록이 있다. 200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참여한 미국의 모리스 그린은 9초88의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100m 결승전 당시 무려 초속 5.1m의 맞바람이 불고 있었다. 초속 5.1m 정도의 맞바람은 100m 기록을 약 0.3초 떨어뜨린다고 한다. 만약 맞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여러 변수가 작용하니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단순 계산으로는 9초58이라는 믿기 힘든 기록이 나온다. 규정 이상의 뒷바람으로 취소된 최고기록은 오바델 톰슨이 세운 9.69다.
다른 환경 변수들도 있다. 스포츠과학자들은 100m 경기는 오히려 기온은 높아야 기록 갱신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단 시간에 근육의 모든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써야 하는 만큼 몸이 식어있으면 에너지를 쏟아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고산지대가 도움이 된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100m 기록이 처음 9초대(9초95)로 진입한 것은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다. 해발 2300m로 공기가 희박해 저항을 적게 받는 덕에 단거리와 필드경기에서 세계신기록이 쏟아져 나왔다.
기록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최고의 잠재력을 가진 선수가 최고의 훈련을 받고, 트랙과 바람과 온도가 최고 조건에서, 최고의 컨디션으로 달릴 때를 가정해 보자. 의견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과학자들은 9.5초를 한계로 본다. 빠른 것에 대한 인류의 동경이 있는 한 ‘가장 빠른 사람’을 향한 선수들의 도전도 계속될 것이다.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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