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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동화 중에 무엇이든 심하게 아껴서 쓰던 자린고비 이야기가 전해진다. 너무 흔들다 닳아버릴까 염려해서 부채는 세워두고 고개를 흔들기도 하고, 식탁에 앉았던 파리가 다리에 된장을 묻히고 날아가자 아까운 나머지 뒤쫓아 가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소금간이 된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두고 맨밥을 먹으며 쳐다보다가 “아이고 짜다” 하고 입맛을 다시는 것으로 반찬을 대신했다는 내용이다.

‘그림의 떡’이라는 말이 있듯이 직접 먹지 못하고 바라봐야만 하는 음식은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는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 이른바 ‘먹방’이 유행이다. 내가 아닌 남이 열심히 음식을 먹으면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시간을 쓰고 열광을 하며 심지어 돈을 지불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현상이라 외신들도 먹방 현상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식사는 가족, 친구, 동료처럼 친근한 사이끼리만 함께할 수 있는 행동이다. 식당에 가서 낯선 사람과 마주앉아 밥을 먹게 되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혼자 살아가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음식을 함께 먹는 경험이 그리워질 때 친밀감을 느끼기 위해 먹방을 본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매번 다른 요리와 반찬을 즐기기가 어려워진 것도 원인이다. 유명 레스토랑의 음식을 소개하는 블로그가 인기를 끄는 것도 먹방과 비슷한 현상이 진작부터 시작됐다는 증거다.

이제는 먹방의 시대를 지나 남이 요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즐기는 ‘쿡방’이 인기다. 기존의 요리 프로그램이 비법을 전수하고 설명하는 방송이었다면, 지금의 쿡방은 경력이 오래된 요리연구가들을 ‘셰프(Chef)’라 부르며 연예인처럼 동경하고 환호를 보내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요리를 따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식을 만들고 맛보는 장면 자체를 좋아해서 방송을 본다. 생활 속에서 직접 요리를 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리’라는 행위 자체가 주는 경이로움도 한몫을 한다.

칼과 불을 이용해 원래 날것이던 재료를 변화시켜 맛있는 음식을 탄생시키는 모습을 바라보면 누구나 입안에 군침이 돈다. 음식을 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는 요리를 잘하는 쪽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게 당연하다. 18세기 영국 스코틀랜드의 법률가 겸 저술가 제임스 보즈웰(James Boswell)은 인간을 요리하는 동물(Cooking Animal)이라 정의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요리를 시작했으며, 식재료를 지지고 볶고 굽고 찌고 삶고 끓이는 행위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리처드 랭엄(Richard Wrangham) 하버드대학교 인류학 교수는 불을 이용해 음식을 익혀먹음으로써 인류의 진화가 촉진됐다며 ‘화식(火食) 진화설’을 주장한다. 1990년대 아프리카에서 야생 침팬지를 연구하던 랭엄 교수는 주식이 되는 열대과일과 덩이뿌리를 시식했다가 깜짝 놀랐다. 쓴맛이 강하고 질겨서 제대로 씹어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화 이론에 따르면 인류는 600만 년 전에 침팬지와의 공통조상에서 갈라져 지금에 이르렀다. 요리라는 고난이도의 과정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것이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면 그 출발점이 궁금해진다. 랭엄 교수는 10년이 넘는 증거 수집 끝에 2009년 요리의 중요성을 담은 책 ‘요리 본능(Catching Fire)’을 펴냈다.

날것을 그대로 먹는 생식이 몸에 좋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 전 세계에서 수렵채집 민족으로 살아가는 부족 중에서 생식을 하는 사례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 랭엄 교수는 식재료를 불에 익혔을 때 맛과 영양이 극대화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실제로 날달걀을 섭취했을 때, 소화를 통해 흡수되는 단백질은 50% 수준이지만 익혀서 먹으면 90% 이상의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다. 생식을 고집하면 낮은 소화 흡수율로 인해 체중이 계속 감소하며 결국에는 번식이 불가능할 정도로 신체 조건이 나빠진다.

불을 이용해서 요리를 하는 것은 여러 장점을 준다. 첫째로는 소화가 쉬운 상태로 식재료가 변화하면서 더 많은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어 체력적으로 유리하다. 뇌는 근육보다 22배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데 인류는 다른 동물보다 훨씬 큰 뇌를 가지고 있다. 음식을 익혀먹지 않고는 유지가 불가능한 구조다. 유인원에 가까운 호모 하빌리스에서 뇌 용량이 1.5배 커져 두발로 걷고 도구를 사용하는 호모 에렉투스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불을 이용한 요리가 필수적이다.

둘째로는 요리는 식재료를 연하게 바꾸므로 섭취와 소화에 필요한 시간도 그만큼 줄어든다. 침팬지는 주간 활동시간의 절반에 달하는 6시간을 매일 음식을 씹는 데 소비하지만, 인간은 1시간 정도만 씹으면 하루 세 끼의 식사를 마칠 수 있다. 요리 덕분에 소화시간도 짧아져 노동시간도 그만큼 더 많이 확보하게 됐다. 셋째로는 음식의 활용도가 높아진다. 식재료를 불에 익히면 영양분이 파괴된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독성이 제거되는 이득에 비할 바가 아니다. 부패에 관여하는 세균과 수분을 제거함으로써 보존기간도 늘어난다.

불에 익힌 식재료가 맛과 영양 면에서 우수하다면 동물들도 요리된 음식을 선호할까. 미국 하버드대학교와 예일대학교 연구진은 랭엄 교수의 주장을 토대로 최근 2년 동안 아프리카 콩고의 야생에서 실제 실험을 진행했다. 날고구마 조각을 플라스틱 용기에 넣고 흔들며 1분 동안 기다리면 마치 요리가 된 것처럼 익힌 고구마로 바꿔주는 장치를 설치하고 반응을 지켜봤다.

연구진이 제공한 날고구마를 그 자리에서 먹어치우지 않고 1분을 기다려서 익힌 고구마로 바꿔간 침팬지의 비율은 90%에 달했다. 심지어 나중에 요리해 먹기 위해 날고구마를 쌓아두는 모습도 보였다. 침팬지가 맛과 영양을 위해서라면 인내심을 발휘할 줄도 알고, 식재료를 변화시키는 과정과 필요성도 문제없이 이해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등산을 하다보면 ‘산에 사는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하는 글귀를 보게 된다. 인간이 먹는 음식은 대부분은 불에 익힌 식재료들이어서 섭취와 소화에 편리하다. 그러나 동물은 인간처럼 조리 기구나 요리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등산객들이 주는 익힌 음식에 길들여지면 야생에서 생식으로 살아가는 능력을 잃어버릴 위험이 크다. 요리는 오직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셈이다.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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