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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다이어트와 성인병 예방과 관련해 많이 회자되는 용어나 요법일 것이다. 한 때 열병처럼 퍼지며 가정의 식탁과 요식업체의 광고 문구를 점령하다시피 했던 ‘웰빙’이라는 단어가 그렇고 최근 붐을 일으켰던 ‘트랜스지방’이 그렇다. 요즘 새롭게 등장한 용어로 ‘당지수’(GI : Glycemic Index)라는 것이 있다. 슬슬 유명세를 타고 있는 당지수에 대해 가닥을 조금 잡아보기로 하자. 역사상 건강에 관한 관심이 요즘처럼 높았던 때가 또 있을까 싶다. 이러한 관심은 이미 큰 줄기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 공중파 방송의 이른바 교양프로들이 다루는 소재들을 보아도 알 수 있고, 매년 아마존닷컴에서 집계하는 서적부문의 베스트셀러 상위작들을 보아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당지수란 뭘까? 측정 방법을 보면 수치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먼저 50g의 탄수화물을 포함한 음식을 공복중인 피실험자들에게 먹인 뒤 두 시간에 걸쳐 일정 시간 간격으로 혈당을 측정한다. 이로써 해당 음식이 두 시간 동안 증가시키는 혈당의 양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양을 동량의 포도당이 증가시키는 혈당으로 나눈 다음 이에 100을 곱하면 당지수를 얻을 수 있다. 즉 같은 양의 포도당과 비교한 각 음식의 혈당 증가치를 백분율로 나타낸 수치가 당지수다. 측정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당지수는 단순한 탄수화물 함유량이 아니라 시간에 따른 혈당 증가치를 보인다.
사실 당지수는 당뇨병 환자를 위해 고안된 수치다. 우리의 몸은 체내의 혈당 흡수를 조절하기 위해 인슐린을 분비하는데 이런 조절 기능에 이상이 생긴 것이 당뇨병이다. 따라서 당뇨병 환자들은 혈당 수치 및 음식 섭취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당지수는 본래 당뇨병 환자가 음식을 조절할 때 일종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당지수를 다른 시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현대인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다이어트에도 당지수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혈당을 빠르게 높이는 음식, 즉 당지수가 높은 식품은 그만큼 많은 인슐린의 분비를 유도하고, 인슐린은 신체가 사용하고 남은 혈당을 지방의 형태로 근육과 장기에 쌓는다. 반대로 당지수가 낮은 음식은 소화속도가 늦어 포만감이 오래 지속되므로 과식을 예방함은 물론 천천히 공급되는 혈당분 만큼의 에너지를 지방에서 끌어내 비만을 억제 또는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면 당지수가 낮은 음식만 골라먹으면 좋다는 것 아니냐”고 물을 것이다. 실제로 일간지 기사나 인터넷의 각종 블로그에서 ‘당지수가 낮은 음식, 안심하고 마음껏 먹자’라는 문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수치’라는 것은 최면술사가 흔드는 추와도 같은 마력을 갖고 있다. 높고 낮음, 그리고 양 극단이 분명하게 눈에 보이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간단한 결론으로 비약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리 간단한가. 이분법이 우리네 삶을 간단하게 만들어주지 않듯 하나의 지수가 당뇨와 다이어트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준다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극단적인 예를 들기 위해 당지수가 0인 음식들의 목록을 보자. 치즈, 참치, 쇠고기, 생선, 돼지고기, 계란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당지수가 낮은 음식은 많이 먹어도 살찌지 않는다는 의견을 그대로 좇아 이 음식들을 마구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지수 테스트를 제안했던 학자들의 공식 웹사이트(www.glycemicindex.com)에서는 아예 쇠고기와 어류, 닭고기 등을 당지수 데이터베이스에서 제외해 놓고 있다. 이런 음식에는 탄수화물이 들어있지 않으며 따라서 당지수를 측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지수가 0과 100인 음식들을 제외하고 그 나머지의 결과는 그대로 음식의 좋고 나쁨으로 직결시켜도 되는 것일까? 구운 감자의 당지수는 85로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이에 비해 감자칩의 당지수는 57이다. 위에서 언급한 웹사이트에서는 70이상을 고당지수로, 56에서 69를 중간급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감자칩의 당지수는 중간급에서도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이런 결과는 감자칩에 포화지방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방이 많은 음식의 경우 소화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시간 당 증가하는 혈당이 적고, 따라서 당지수가 낮게 나온다. 하지만 당지수만 가지고 감자칩을 좋은 음식으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와 같은 혼란은 기본적으로 음식이 다양한 영양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당지수는 낮아도 지방을 과다하게 함유한 음식이 있고, 당지수는 높지만 탄수화물의 함유량 자체가 아주 적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섬유소나 무기질을 다량 포함하고 있는 식품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같은 종류의 음식이라 해도 그 조리법에 따라 당지수에 현저한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흥미진진한 결론을 기대했던 분들은 아쉽겠지만 결국 당지수란 음식에 대한 대체적인 이정표를 제공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당지수가 주는 교훈이란 수치나 단편적인 결과에 집착하기 보다는 건강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폭넓게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건강이 마치 공기와도 같아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느끼기 힘들듯, 그것을 지키고 되찾기 위한 방법에 특별한 지름길이 없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글 : 김창규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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