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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커비투릴’(Cucurbituril)이란 이름을 들어봤는가. 우스꽝스럽게 들리지만 최근 가장 각광받는 나노물질의 이름이다. 원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쿠커비투릴은 둥글넓적한 호박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호박의 학명 ‘쿠커비타세’를 따서 이름이 지어졌다.
이 물질이 처음 세상에 등장한 건 1905년. 지금부터 약 100년 전이다. 그러나 그때는 이 물질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가능성이 있을지 몰랐다. 그 뒤 1981년 미국 윌리엄 목 박사가 쿠커비투릴을 X선회절법으로 분석해 속이 텅 빈 호박 모양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최근 우리나라 포스텍 김기문 교수는 쿠커비투릴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주목받는 호박형 분자, 쿠커비투릴에 대해 알아보자.
쿠커비투릴의 모양은 정확히 말하면 호박의 위아래를 수평으로 잘래낸 뒤 속을 파낸 모양이다. 쿠커비투릴 내부는 텅 비어있어 다양한 분자나 이온이 들어갈 수 있다. 무언가 넣을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위 아래로 카르보닐기(C=O)가 있어서 다양한 이온을 붙일 수 있다. 무언가 붙여 우리가 원하는 조작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구조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쿠커비투릴은 ‘글리코투릴’이라 부르는 분자 6개가 모여 만들어졌다. 이렇게 작은 분자들이 모인 거대 분자집합체를 ‘초분자’라고 부른다. 초분자에서 분자와 분자 사이는 약한 힘으로 결합돼 있다. 따라서 초분자에 있는 각 분자들은 조건에 따라 결합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는 특성을 보인다.
초분자가 나타내는 주요한 특성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자신에게 꼭 맞는 짝을 찾아 결합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각각의 분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거대한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초분자의 특성 때문에 쿠커비투릴은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최근 김 교수는 쿠커비투릴이 가진 여러 가능성을 발견해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먼저 쿠커비투릴은 작은 분자를 담는 ‘그릇’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른바 ‘나노캡슐’이다. 김 교수는 쿠커비투릴을 메탄올 용액에 넣은 뒤 자외선을 쬐면 자발적으로 둥근 공 모양을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만들어진 공의 지름은 50~500nm(나노미터, 1nm=10-9m). 하나의 공에 3000~5000개의 쿠커비트릴이 들어간다.
그 전까지 나노캡슐을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공 모양의 주형을 만든 뒤 바깥에 우리가 원하는 물질을 씌우고 속의 주형을 녹이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쿠커비투릴은 적당한 조건만 맞춰주면 스스로 캡슐 모양을 형성한다. 나노캡슐 속의 빈 공간에는 항암제 등을 넣어 약물을 전달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항암제는 캡슐에 담겨 있다가 암세포 근처에서만 캡슐이 터져 다른 세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암세포만 선별적으로 죽인다.
이때 덮개 역할을 하는 쿠커비투릴에 있는 구멍이 큰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쿠커비투릴의 구멍에 암세포의 표면 단백질에만 붙는 적절한 분자를 끼워 넣으면 나노캡슐이 암세포로 찾아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쉽게 말해 미사일에 유도레이더를 붙이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적절한 유도레이더를 계속 찾고 있다.
쿠커비투릴이 주목받는 다른 분야는 ‘분자 기계’의 가능성이다. 분자 기계란 개별 분자를 우리가 원하는대로 움직여 작동하는 나노 단위의 기계를 말한다. 아직 미래의 일이지만 여러 후보 물질을 두고 연구가 진행 중이다. 후보 물질 중에 ‘로택산’(rotaxane)이 있다. 로택산은 실 모양의 분자에 고리 모양의 분자가 끼어진 초분자체다. 마치 구슬알을 목걸이에 끼워넣듯이 말이다.
쿠커비투릴은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에 가늘고 긴 실 모양의 분자에 끼워넣어 로택산을 만들 수 있다. 김 교수는 초기 발견된 글리코투릴 6개로 이뤄진 쿠커비투릴 외에 5개, 7개, 8개 분자로 이뤄진 쿠커비투릴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분자의 수가 많을수록 쿠커비투릴의 크기는 커지고, 움직임은 더 유연해진다. 7, 8개 분자로 된 쿠커비투릴은 6개 분자로 된 쿠커비투릴보다 더 두꺼운 실에 끼울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로택산에 조건을 바꿔주면 쿠커비투릴의 위치가 이동한다. 전기를 흘리거나 산과 염기를 가하면 쿠커비투릴이 가운데서 옆으로, 혹은 옆에서 가운데로 이동한다. 기초적이지만 외부의 조건을 조절해 분자 단위의 결합을 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움직임을 정교하게 하면 분자 기계의 부품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같이 쿠커비투릴은 쓰임새 많은 여러 재주를 가졌다. 아직 상용화까지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상상 속에만 있던 기술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력한 물질이다. 분자 세계를 더 많이 이해할수록 통제할 수 없었던 나노 세계도 통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쿠커비투릴이 펼칠 미래를 기대해 보자.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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