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 소리가 멀어져가며 웅성대던 이들도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골목 어귀 집에서 발생한 화재는 잠시나마 작은 동네의 화제가 됐다. 선선해진 바람을 쐬러 옆 동네 공원에 나들이를 다녀오던 짠돌 씨 가족도 원치 않게 불구경을 하게 됐다. 다행히 불이 크게 번지지 않아 처음 불이 붙은 가스레인지 부분만 까맣게 타고 나머지는 무사했다. 소방관은 처음 발견한 사람이 창문으로 소화기 호스를 집어넣어 재빨리 진화한 덕분에 불이 커지지 않았다고 했다. 가을에는 공기가 건조해 불이 나기 쉬우니 소화기를 잘 챙기라는 당부와 함께. 눈을 반짝이며 얘기를 듣던 막희는 돌아오자마자 온 집을 뒤지며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또 다시 엄습하는 ‘불길한 예감’에 짠돌 씨는 재빨리 안방으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그의 노력도 소용이 ..
한국인이 선조에게 물려받은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값어치 있는 것 하나만 골라내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한글을 꼽을 것이다. 숭례문(남대문) 대신 간송미술관이 간직하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을 국보 1호로 새롭게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간간히 들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근거는 무엇일까. 한글은 띄어쓰기가 발달된 언어지만 굳이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다. 다음 예를 보자.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시대를 앞서간 천재문학가 이상이 쓴 시 ‘오감도 제1호’의 일부다. 이 시는 봉건적 질서와 식민지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기존 문법의 띄어쓰기를 무시했다. 일상의 가장 상식적인 질서를 거부한 셈이다. 하지만 시를 읽는..
2007년 10월 4일은 인류최초의 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된 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하늘을 향한 인류의 꿈은 계속해서 더 넓은 우주로 뻗어나가고 있다. 아폴로 11호에 몸을 싣고 달을 탐사했고, 태양계 곳곳에 탐사위성을 보냈다. 직접 가기 힘든 곳은 탐사로봇을 보내 탐사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8월 3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새로운 화성탐사선, ‘피닉스’(Phoenix)가 델타 II 로켓에 실려 화성으로 떠났다. 오래 전부터 SF소설의 주된 소재였던 화성은 스피릿, 오퍼튜니티 같은 여러 탐사선이 가서 탐사 중이다. 이번에 발사된 피닉스의 주 임무는 화성의 보관돼 있을지 모르는 물을 확인하는 것. 인류는 왜 화성에서 물을 찾으려는 것일까? 인류의 화성 탐사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적 인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을 뽑는 투표에서 프랑스 사람들은 나폴레옹을 제쳐 놓고 파스퇴르(1822~1895)를 뽑았다. 그들에게는 유럽 전체를 누빈 나폴레옹도 영웅이지만, 수천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전염병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킨 파스퇴르가 더욱 진정한 영웅이었던 것이다. 1880년대 ‘세균 사냥꾼’으로 불리는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와 로베르트 코흐의 등장으로 인류의 전염병과의 싸움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파스퇴르는 탄저균을, 코흐는 결핵균과 콜레라균을 발견하고. 특정 세균이 특정 질환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혔기 때문이다. 과학은 종종 우연한 사건으로 발견된다. 당시 유럽은 탄저병과 콜레라가 돌던 시절이었다. 파스퇴르의 실험 보조원은 실험용 닭에게 콜레라균을 주입하는 것을 깜빡 잊고..
기원전 1500년 고대 이집트의 에버스 파피루스(Ebers Papyrus)에는 ‘너무나 많은 소변을 보는 병’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2세기 터키의 의사 아레테우스는 이 병을 ‘뼈와 살이 녹아서 소변으로 나오는 병’이라고 기록했다. 이 병을 현대식으로 바꿔 말하면 당뇨병(糖尿病), 이름대로 ‘당이 섞인 오줌을 누는 병’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당뇨병 환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국민 10명 중 1명은 당뇨병 환자로 30년 전에 비해 무려 10배나 증가했다. 당뇨병은 한번 걸리면 평생 관리해야 하고 수많은 합병증을 동반하는 탓에 엄청난 비용이 든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당뇨병 사망률은 OECD 국가 중에 최고인 35.3%다. 결코 만만히 볼 질병이 아니란 뜻이다. 정상인은 오줌에 당이 전혀 없다. 당뇨..
후각수용체 ‘S-51’은 태어나면서부터 특별한 숙명을 가졌다. 암모니아 분자와 유독 잘 결합하는 자신의 특성 때문에 그는 자기 주인이 화장실에 가는 것을 어떤 후각수용체보다 민감하게 알아차렸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주인은 그의 골칫거리였다. 사실 그는 몰랐지만 주인은 악성 변비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엄지손톱만한 넓이의 후각상피였다. 이곳에서 1000개가 넘는 수용체가 오밀조밀 모여 살고 있었다. 수다쟁이 뇌 신경세포들은 시신경세포의 신호를 인용해 “유전자 풀의 3%를 차지하는 후각 유전자들이 각각 발현한 결과”라고 떠들어댔지만 그는 그저 어느날 정신차려보니 여기 있을 뿐이었다. 각각의 후각수용체는 자신과 잘 결합하는 냄새 분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대부분의 후각수용체는 자신..
참나무란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참’나무라면 ‘진짜’나무라는 뜻인데 과연 어떤 나무가 진짜 나무일까. 그런데 식물도감에는 ‘참나무’란 이름이 없다. 대신 ‘참나무속’라는 이름이 나오고 여기에 신갈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가 있을 뿐이다. 이들을 통칭해 참나무라 일컫는 이유는 서로가 유전적으로 가까워 서로 다른 나무끼리 쉽게 인연이 맺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신갈나무와 떡갈나무 사이에 자식이 태어나면 떡신갈나무로 불린다. 상수리나무가 참나무속 나무와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된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상수리나무의 원래 이름은 ‘토리’였다.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 간 선조는 제대로 먹을 음식이 없자 토리나무의 열매인 토리로 만든 묵을 먹었다. 묵 맛에 빠진 선조는 ..
동물의 혈관에 파란 잉크를 주사하면 온몸에 파란색이 퍼질까? 이런 궁금증은 이미 100년 전에도 있었고 당시 사람들은 ‘트리판 블루’라는 염색약을 혈관에 넣어 실험해 봤다. 예상대로 온몸에 파란색이 퍼졌다. 그런데 예외가 있었다. 뇌와 척수에는 파란색이 퍼지지 않은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모든 피는 심장의 좌심실에서 나와 온몸을 돌고 다시 심장의 우심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우심방의 피는 우심실을 거쳐 허파에서 가스 교환을 하고 다시 좌심방으로 들어간다. 사람에게 심장이 하나뿐이고, 피가 똑같다면 결론은 하나뿐이다. 뇌와 척수에 파란 염색약을 막아주는 장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를 ‘혈액-뇌 장벽’(Blood-Brain-Barrier, BBB)이라고 부른다. 뇌와 척수의 관문, B..
9월 10일 남자 100m에 세계신기록이 달성됐다. 이탈리아 국제육상그랑프리에서 자메이카의 아사파 파웰은 9초74의 기록으로 2년 전 자신이 세웠던 세계기록을 0.03초나 앞당겼다. 불과 2주 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미국의 타이슨 가이에 밀렸던 파웰은 이번 세계기록으로 무너진 자존심을 세웠다. 파웰의 기록을 시속으로 환산하면 36.96km. 1초에 10.27m를 달린 셈이다. 10초 안에 승부가 갈리는 남자 100m 경기는 수많은 육상 종목 중에서도 특별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람’을 가리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기록을 단 100분의 1초라도 단축하기 위해 선수와 함께 과학자도 뛰고 있다. 100분의 1초를 다투는 100m에서 출발 반응속도는 기록 달성의 첫 단추다. 이론적으로 가능한 최소 ..
지난 2002년 개봉한 톰 크루즈 주연의 공상과학(SF)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054년 워싱턴 DC을 배경으로 한다. 비교적 먼 미래인 만큼 이 영화에는 현재는 상상하기 어려운 첨단 장비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 중 하나가 로봇 거미다. 로봇 거미는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사람의 망막에 빛을 쪼여 신원을 확인한다. 신원 확인을 거부하면 전기 충격을 가하기까지 한다. 이를 테면 ‘지능형 미래 경찰견’이다. 그런데 왜 하필 거미일까. 영화에 답이 있다. 로봇 거미는 자세를 자유자재로 바꿔 가며 문틈 같은 좁은 공간을 파고든다. 사람의 몸도 거뜬히 기어오른다. 영락없는 실제 거미의 모습이다. 현재 과학자들이 생물의 움직임을 모방한 로봇을 개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길게는 수천만 년 동안 진화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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